찔레꽃 피던 길
고향집 동쪽에는 작은 오솔길이 있었다. 과수원에 가거나 송아지 몰고 풀 먹이러 다니던 작은 길이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아 겨우 한 사람 드나들 수 있는 작은 길 돌담 아래는 칡, 여뀌, 억새 같은 풀이 자라나 지나는 내 얼굴에 스치기도 했다. 호젓한 길에 들어서면 아늑하고 포근한 온기가 나를 감싸주는 것만 같았다. 돌멩이도 많고 울퉁불퉁한 길인데도 나만의 세상 같아 큰길로 가지 않고 꼭 그 길로 다니곤 했다.
오솔길 언덕에는 소나무 밭이 있었다. 소나무 언덕을 너머 더 먼 곳에 언뜻언뜻 한라산이 보였다.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해하면서 아침이면 학교에 가고 교문을 나서면 배운 것들을 모조리 잊고 들로 산으로 돌아다니며 계절을 보냈다.
좁은 길 따라 과수원에 심부름 갈 때 담 구멍으로 비어져 나온 강아지풀을 꺾어 흔들며 갔다. 바스락거리는 인기척에 고개 들어 보면 보리밭 너머 덤불에서 꿩이 푸드덕 날기도 했다. 멀리서 장끼가 짝을 찾는 소리에 “꿩꿩, 장서방” 대신 대답하며 꿩이 날아간 먼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오솔길 건너에는 오래된 동백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당산이 있다. 산이라고 하기에 옹색한 그저 나무들과 숲 덤불에 지나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당산 근처에 장례를 치르고 상여를 보관하는 곳집이 있어서인지 어두운 숲 속은 비밀이 잔뜩 숨겨져 있는 듯, 기이한 기운을 내뿜어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처럼 느껴졌다.
당산에 있는 오래된 팽나무 가지에는 오색 천 조각을 매단 줄이 늘어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오색 천들이 나부낄 때면 금방이라도 한 맺힌 영혼이 실체를 가진 무엇으로 스르륵 나타날 것만 같아 오싹해지곤 했다. 나무 아래는 누군가 애니미즘을 숭배한 흔적이 있었고, 들로 쏘다니던 개구쟁이들이 빛깔 좋은 떡이나 과일을 먹고 다쳤다거나 시름시름 앓다가 죽기도 했다는 출처가 분명치 않은 소문이 어린 우리들 사이에 퍼지곤 했다. 그곳은 신이 사는 신령스러운 곳이었다. 당산이나 곳집의 존재는 어린 우리들에게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경고를 주고 잘못을 응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었다.
온 세상이 봄꽃으로 만발한 오뉴월이 되면 그 길에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 길목에 들어서면 찔레꽃 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노란 꽃술 주위로 벌어진 하트모양의 꽃잎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느라 내 걸음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잎 사이로 솟아올라온 찔레순도 꺾어 먹었다. 발밑에는 자왈이 울퉁불퉁 있었고 가끔 찔레꽃 덤불에서 뱀이 나오기도 했다. 꽃들을 빼앗기지 않으려 가시가 돋아난 것인지도 모른 여린 순을 꺾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가시에 온통 다리가 긁히기도 했다. 연한 분홍빛으로 통통하게 물이 오른 새순을 꺾어 껍질을 벗겨 촉촉한 연두색 줄기를 깨물면 싱싱한 풀냄새와 상큼하고 달큼한 맛이 입안에서 아삭거렸다.
때로 송아지를 몰고 갔다. 송아지는 여린 풀에 마음을 빼앗겼지만 나는 담에 붙어 핀 찔레꽃에 눈이 갔다. 하얀 꽃잎 위로 벌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녔다. 송아지는 담 아래 돋아난 풀을 먹느라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꼬리를 연신 흔들며 등에 붙은 쉬파리를 쫒았다. 송아지는 당시 우리 집 중요한 재산목록이었다. 송아지를 잘 키워야 그걸 팔아 학비로 쓰고 살림에도 보탤 수 있으니 송아지에게 맛난 풀을 먹이는 일을 게을리하면 안 되었다.
언덕 위 소나무에 길게 줄을 묶어 놓으면 송아지는 줄이 허락하는 반경 안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었다. 그동안 나는 풀밭에 드러누워 들고 온 공책에 숙제도 하고 그러다 벌렁 누워 하늘 보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도 밑천이 다하면 천천히 떠 가는 흰구름을 망연히 보며 생각했다. 저 구름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어디서 무엇을 보고 다닐까. 저리 흘러가는 구름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나도 얼른 어른이 되어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오솔길을 다녀올 때 찔레꽃 한 줌을 꺾어오곤 했다. 줄기가 질겨 잘 꺾어지지 않아 손등이 가시에 찔리기도 했다. 한 줌 꺾은 찔레꽃을 연신 코로 가져가며 발걸음이 빨라졌다. 유리병을 씻어 꽃을 꼽고 창문턱에 올려놓았다. 턱을 괴고 창밖을 보면 보리밭 너머 당산은 더 푸르렀다. 온 세상이 싱그러웠다. 얼마 못 가 꽃잎은 다 지고 노란 꽃술이 꼬부라진 채 머리숱이 성긴 늙은 할머니 같았다. 꽃잎이 창턱에 툭툭 떨어지는 속절없는 꽃. 서러운 무엇이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커서 무엇이 될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막연하기만 했다. 찔레꽃이 슬픔을 데려온 것처럼 울적해지곤 했다. 어떤 사물에 투영되는 느낌은 비슷한지 찔레꽃은 수많은 시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꽃이기도 하다.
봄이면 감나무 꽃눈이 내리던 내 방. 후드득 소리에 창문을 열어보면 순한 냄새가 고인 돌담 구석 무성한 대나무에 녹비가 내렸다. 빗줄기에 놀라 휘청 기울어진 댓잎. 이내 가늘어진 빗방울이 토도독 댓잎 건반을 두드리며 지나갔다. 푸르른 보리밭에도 초록비가 내렸다. 지붕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 빗물이 방 안으로 튀어 들어왔지만 창문을 활짝 열었다. 빗방울이 튀어 오르며 뺨에 닿는 서늘한 느낌 위로 비릿한 푸른 보리 냄새가 밀려왔다. 나지막한 밭담에 기어 올라온 담쟁이도 빗물에 젖었다. 돌담에 부서지기도 하고 담쟁이 이파리에 떨어져 잠시 맺혔다가 뭉쳐지고 둥근 미끄럼을 탔다. 창문 너머 보리밭에 비바람이 불 때마다 한차례 파도가 밀려가면 다시 새로운 파도가 밀려오고 끝없이 밀려갔다. 오고 가는 보리파도에 그만 현기증이 일었다. 그 창가에서 나는 어린 시인이 되기도 했다.
어느 날 과수원에 심부름을 가다가 오솔길에서 그 남자를 만났다. 그 길을 다닐 때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 나는 적이 긴장했다. 이마가 반들거리는 둥근 얼굴이 팽팽하고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 사십대로 보였다. 그는 헐렁한 잠뱅이를 종아리까지 걷어 올린 채 뒷짐을 지고 마주 오고 있었다. 풀기가 살아 있는 잠방이는 걷어 올린 잠뱅이는 끝이 돌돌 말려 있고 그 아래로 드러난 다리 근육이 탄탄했다. 그가 신은 새하얀 고무신에는 먼지 하나 없었다.나는 그가 지나갈 때까지 담벼락에 바짝 붙어 섰다. 해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겁이 났다. 내 앞을 스쳐 지날 때 콩닥거리는 심장소리가 튀어나와 오솔길에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는 고개 숙여 앞만 보고 걸어갔다. 그가 지나갈 동안 풀잎도 흔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바싹 붙어 서 있으면서도 멈출 수 없는 호기심에 그를 올려다보았다. 얼굴이 햇살에 반짝였고 빙긋하게 웃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동네에 있는 길이란 길은 모두 돌아다녔다. 해 질 무렵이면 우리 집 올레 앞으로 지나곤 했다. 가방을 메고 나무지팡이 들고 다녔던 좀머 씨와는 달리 그는 아무것도 없이 뒷짐을 진 채 땅만 보고 걸었다. 흰 고무신은 눈이 부셨고 이상하게 그가 지나는 것을 본 다음 날은 꼭 비가 왔다. 그는 현실 너머의 세계를 보는 걸까. 좀머씨 처럼 불안한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던 걸까. 과수원에 갈 때 길 끝에 있는 그의 집 앞을 지나게 되는데 정낭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마당은 늘 정갈했다.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방금 비질을 한 듯 흙마당이 반짝였다.
참 이상하게도 동네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 있었다. 어떤 이유로 세상의 시계가 살짝 비틀어진 사람. 원체 똑똑했던 그여서 사람들은 그를 박사라고 불렀다. 마음속 시계가 멀쩡할 때는 고등학교 선생이었다. 말이 없고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사람에게 학교생활은 녹록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학교를 나오게 되었다. 아내를 의심해서 칼을 들고 죽이려 하니 그만 아내도 도망가버렸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그렇게 되고 나서부터 신경증이 더 심해졌다는 말도. 매일 길을 돌아다니며 아내를 찾는 것이었을까. 오랜 세월을 그렇게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요양원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었다.
어느 날 봉은사에 갔더니 흰 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하얀 잎에 노란 꽃술을 달고 있는 모습이 찔레꽃과 비슷했다. 산사나무 꽃이었다. 그 향기가 좋다 하지만 나에겐 찔레꽃만 못하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산사나무 꽃. 프루스트에게는 콩브레를 불러오는 추억의 꽃이듯, 나에게는 찔레꽃이 그러하다.
어디서든 찔레꽃을 보면 마음은 고향 오솔길로 날아와 창문에 턱 괴고 앉아 있는 찔레꽃 어린 소녀로 돌아가곤 한다. 조지아의 카즈베기의 깊은 동네 우쉬굴리에 갔을 때 길에서 찔레꽃을 만났다. 흙길 파인 곳에는 물이 고여 있고 길 가에 수북한 찔레꽃 위에는 벌들이 윙윙거리고 있었다. 어린 시절 어딘가 와 있는 듯한 기시감. 머나먼 낯선 땅에서 내 고향 오솔길에 있는 찔레꽃을 만나니 그만 나는 송아지를 몰고 가던 그때로 순간이동 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그곳은 내 고향 오솔길이 되었고. 흐드러진 찔레꽃 무더기에서 한 송이를 꺾으려다 가시에 찔리고서야 문득 깨달았다. 날마다 혼자만의 길을 헤매던 그 아저씨도 삶의 어느 길에서 보이지 않은 어떤 것에 찔리고 아파했던 것뿐이라고.
오랜만에 그 길을 걸어 본다. 그렇게 좁던 길은 평평하게 넓어지고 찔레꽃도 모두 베어지고 대신 말끔한 돌담이 쌓아져 있다. 그리 길고 힘든 오르막이었는데 채 5분이 안되어 소나무 동산에 오르고 만다. 소나무가 많던 언덕은 평평하게 다져진 주택지가 되었고 소나무도 몇 그루 남아 있지 않다. 당산나무들도 잘려나가 한 두 그루 남아 있을 뿐이다.
잃어버린 무엇을 찾기라도 하듯 돌담 구멍을 더듬으며 천천히 걷는다. 추억이 새겨진 흔적 하나 어딘가 있을 것만 같아 두리번거린다. 길에 들어서면 새어 나오던 찔레꽃 향기 맡으며 걷던 어린 소녀 대신 중년 여인이 우두커니 서 있다. 나는 그만 쓸쓸해지고 만다.
문득 고개 들어 보니 당산에 무리 지어 서 있는 대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내 가슴으로도 서늘한 바람이 지나간다. 흰 고무신 신고 찔레꽃 피는 길을 걷던 그 아저씨는 하늘로 돌아가 집 나간 아내를 찾았을까. 찾았기를. 온전한 정신으로 못다 한 부부의 연은 이어갔기를.
나는 마음속에 오솔길 하나 만들어 찔레꽃을 피우기로 한다. 기억 속의 어린 시절을 환하게 밝혀 줄 오솔길에는 봄이 오면 하얗게 찔레꽃이 피리라. 그러면 창가에서 턱 괴고 보던 일렁이는 푸른 보리밭을 다시 만나고, 방바닥에 엎드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노래를 듣던 날로 돌아가리라. 울적해질 때마다 마음속 그 길, 찔레꽃 피던 내가 사랑한 길로 찾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