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그것들도
강아지풀과 명아주가 들길에 가득하다. 제주에서는 강아지풀을 강셍이쿨, 명아주는 제낭 또는 제쿨이라고 부른다.
초등 교육과정에 명아주와 강아지풀을 관찰하는 식물 단원이 있다. 강아지풀은 벼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이고, 명아주는 비름과의 한해살이풀이다. 주변에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쌍떡잎 표본으로 명아주와 외떡잎식물의 표본인 강아지풀을 함께 관찰하도록 되어 있다.
학교 뒤뜰에 나와 짝을 지어 관찰하는데 돋보기를 들이대기도 하고 잎을 뒤집어 보기도 하고 손톱으로 눌러보기도 하며 관찰에 열중하던 아이들. 명아주와 강아지풀을 조심스레 캐내어 종이 위에 펼쳐 놓고 그리는 공책 위로 쏟아지는 햇살에 부신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바라보던 아이들. 몇몇 개구쟁이들은 관찰은 뒷전이고 강아지풀을 뜯어 뒤춤에 감추고 살금살금 다가가 여학생 뒷목을 간질여 놀라게 하고는 달아난다.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하늘에 퍼지곤 했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읽다 보면 명아주를 데쳐 먹는 장면이 나온다. 루마니아에 살던 독일인들이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유형을 간다. 배고픔이 그들을 휩쓸 때, 먹을 것이 없는 그들은 황량한 들판에 자란 이미 세어버린 명아주를 뜯어 삶아 먹는다. 봄이면 너울거리는 어린 풀들이 어느 것인들 먹지 못하는 것이 없으련만 성성하게 자란 명아주를 뜯어다가 삶아 먹는 모습을 생각하면 입안이 껄끄럽다. 책을 읽고 나자 명아주가 그토록 슬픈 풀이 되고 만다.
열 살쯤이었을 때다.
어머니는 동생의 병구완으로 서울에 가고 아버지는 밭에 혼자 가서 검질(김)을 매고 있었다. 학교에 다녀온 나는 밭에서 혼자 일하고 있을 아버지께 점심을 가져다 드려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밥과 김치 그리고 집에 있는 뭔가를 담은 구덕을 메고 밭으로 갔다. 집에서 먼 곳인 데다 남의 밭을 몇 개를 넘어가야 하는 데라 길을 잘 찾아야 했다.
뜻밖에 점심을 짊어지고 나타난 어린 딸의 모습에 깜짝 놀란 아버지. 나는 내가 가져간 점심을 달게 드시는 게 좋았지만 아버지는 밥을 넘기면서 목이 메었다고, 그 일을 잊을 수 없다고 언젠가 하셨다.
집으로 오는 먼 길은 피곤했다. 햇살이 자꾸 돌담 아래로 이끌었다. 강셍이쿨(강아지풀)도 소앵이(엉겅퀴)도 제낭(명아주)도 담 아래 수북했다. 돌담 아래 앉아 부드러운 강셍이쿨을 뜯어 빙글 손으로 돌리다가 뺨에 대고 쓸어보다가, 하늘 멀리 흘러가는 구름을 보다가. 새소리 바람소리가 스르르 멀어졌다.
누군가 흔들었다.
“얘야, 여기서 자면 안 된다. 집에 가거라.”
길 소실점 너머에는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직 남은 해가 작은 등을 밀어주고
무성한 강셍이쿨도 어서 가라고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