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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설자 Apr 06. 2024

나무를 심은 사람

고결한 인격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다시 읽는다.  어째서 여태 <나무를 심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던 걸까. 한 번 입력된 잘못된 정보는 오류를 쉬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래전에 교실에 있던 책을 읽었던 터라 새 판본은 어떤 그림이 나왔을지 궁금했다. 장 지오노는 한 양치기가 나무를 심은 실화에 아이디어를 얻어 이 책을 썼다. 나무가 자라 숲을 이루고 황무지를 변화시킬 만한 시간 동안 쓰느라 20년 동안 글을 다듬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애니메이션으로 나무를 심은 사람을 보았다. 2만 장이 넘는 파스텔톤 그림으로 만든 독특한 애니메이션은 나의 마음을 온통 흔들었다. 아름다운 그 작품은 식목일이 가까워지면 늘 어린이들에게 보여 주곤 했다. 그 작품을 그린 화가 프레데릭 백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나 절망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큰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뼈대만 남은 집들 속으로 불어닥치는 바람소리는 마치 짐승들이 먹는 것을 방해받았을 때 그러는 것처럼 으르렁거렸다”는 말이나 “견디기 어려운 날씨 속에서 달리 벗어날 곳을 찾지 못한 채 서로 부대끼며 이기심만 키워 갈 뿐이었다. 그들은 그곳을 벗어나기를 바라면서 부질없는 욕심만 키워 가고 있었다.... 아무리 굳센 사람이라 할지라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여인들의 마음속에서도 원한이 끓고 있었다... 바람 또한 신경을 자극했다.” 는 말이 황폐해진 자연이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이런 황무지에
쇠막대로 구멍을 내 떡갈나무가 될 도토리를 심고


 도토리가 싹을 틔우고 서서히 안개처럼 황무지가 푸르게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점 마음이 편안해진다. 무너진 집들만 있던 황무지에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면서 물이 흐르고 숲이 되살아났다. 새들이 오고 벌레들이 자라고 그들이 죽어간 사체가 거름이 되어 숲은 더욱 비옥해지고 더 많은 나무들이 자라났다. 자작나무가 자란 하얀 숲이 생기고 풀과 나무가 자란 언덕은 푸른 안개가 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돌아왔다.



나무들이 자라면서 맑은 물이 흐르고
숲이 살아나고 사람들이 돌아오고 희망도 다시 돌아왔다.




 

 책을 읽으면서 '고결한 인격’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고결한 인격. '고결'이라는 낱말이 범접할 수 없는 높이로 우러러 보인다. 사전에는 '고결하다'를 '고상하고 깨끗함' '뜻이 높고 깨끗하다' '성품이나 인격이 매우 훌륭하고 깨끗하다'라고 나와 있다. 박완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당신의 오빠를 ‘별안간 우뚝 솟은 어떤 정신의 높이’를 가진 사람으로 묘사한다. 아마 그런 사람에게 어울리는 말이 고결이 아닐까. 가까이에 그런 영혼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성장하는 동안 그런 ‘높은 정신’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일은 참으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을 되새겨 본다. 흠모하고픈 정신이 높은 인격을 살면서 만난 적이 있는가. 오랜 세월 나를 지난 인격들이 오늘날 나를 만들었을 터이다. 좋은 어른들이 내 곁을 지켜주고 선한 사람들에게 받은 영향이 내게 스며들었을 것이다. '뜻이 높고 깨끗하다, 성품이나 인격이 매우 훌륭하고 깨끗하다'라는 의미에 어울리는 두 분이 얼핏 떠오른다.


 어린 시절 내가 추앙한 최초의 어른. 내가 다닌 국민학교 교장 선생님이다. 입학식 날 우리를 운동장에 세워놓고 알아들을 수 없는 긴 훈화는 나를 지루하게 했지만 학교에 갈 때마다 그분은 언제나 운동장에 있었다. 교실 앞 화단에서 마른풀을 뽑거나 운동장에 휴지를 주웠다. 허리 굽혀 뭔가를 줍거나 일을 하다가 온화한 표정에 하회탈 같은 웃음을 짓고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백 오십 명 남짓한 학생들의 이름을 다 알았던 것인지 모르지만 어쩌다 나를 보면 이름을 불러 주며 칭찬을 하셨다. 일 학년 어린 나는 학교의 가장 높은 어른인 교장 선생님께 칭찬을 들으면 무척 자랑스러웠다. 나를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하게 높아지고 존재감을 드높여주었다. 단순히 칭찬을 넘어 한 개인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효능감을 갖게 했다.


 나중에 페스탈로치를 알게 되었을 때, 운동장에서 휴지나 유리조각을 줍는 우리 교장선생님을 떠올리곤 했다. 국민학교 상장에는 붓글씨로 쓴 그분의 이름 ‘류우익’을 지금도 기억한다. 늘 화단 앞에서 일하다가 나이 든 얼굴 가득 웃음 띤 얼굴로 이름을 불러주며 칭찬을 하면서 허리를 펴던 교장선생님의 모습이 함께 떠오른다.


 또 한 분은 선생이 되어 함께 근무했던 정 옥수 선생님이다. 그분은 조용하고 말이 없는 분이지만 한 번 말을 시작하면 동서양을 넘나들었다. 출근하면서 역에서 만나 같이 학교까지 함께 오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주로 선생님은 젊은 시절에 읽었던 책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그때 나는 얼마나 나의 밑천이 얕은지 부끄러워 선생님을 닮으려 철학책도 사서 읽곤 했다. 나는 그분과 이야기할 때 참 좋았다. 일상적이고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학교생활 속에서 그분의 이야기는 반짝반짝 빛나는 이슬 같았다. 아침마다 화장대에 놓인 소박한 가야 그릇을 볼 때마다 가야 시대의 온화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그분의 얼굴에 옛사람의 품위를 그려보곤 했다.


 퇴직하고 귀농하여 조용하며 볕이 많이 드는 집에 그분의 품격처럼 살고 계시다. 만났을 때, 어쩌다 나온 가야 그릇 이야기를 했더니 아끼는 사람이 감상하는 것이 맞다며 내게 보내주셨다. 그리고 다시 좋은 감상자가 나오면 물려주라는 말도 하셨다.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마음속에 좋은 어른으로 자리하고 있다. 나는 그분을 존경한다. 누군가를 존경하는 일은 마음을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마음이 저절로 움직여야만 하는 일이다.

 

 살면서 좋은 어른을 만나는 것은 축복이다. 그보다 온 마음으로 흠모하는 고결한 인격을 만난다는 일은 더 큰 축복이다. 벌써 육십 년을 살아왔지만 책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 살아 있는 고결한 인격을 만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좋은 어른을 닮아가려는 마음이 세상을 움직인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자연히 세상은 고결한 인격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교사로 일하는 동안 만난 많은 어린 영혼들 앞에서 나는 어떤 인격이 되었을까. 좋은 어른은 되었을까. 좋은 삶을 사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린 시절을 지나며 얼마나 훌륭하고 고결한 인격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지에 기반하지 않을까.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면"   

  

 나 같은 사람은 가 닿을 수 없는 지점이어도, 이제는 조금 더 마음을 닦아야 할 나이가 되었다.                





<나무를 심은 사람>

개정 2판 10쇄, 2022년 9월 29일, 도서출판 두레

지은이: 장 지오노

옮긴이: 김경온

그린이: 최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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