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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발견

백송이 있었네

by 오설자


산책길에 못 보던 나무를 발견한다.

그렇게 많이 다니면서도 눈여겨보지 못한 나무.

언뜻 보고는 자작나무인가 했는데 잎이 아니다.

백송이다.

무려 세 그루가 두터운 서너 줄기를 꼬고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갑자기 어느 날 심긴 것도 아닐 텐데.

왜 여태 못 보았을까. 눈이 나쁘기도 하지만

주변을 허투루 보고 다닌 탓이다.


하얗게 얼룩덜룩 벗겨진 줄기가 버즘나무 비슷하다.

예비군복 같은 무늬를 만져 본다. 줄기가 단단하니 듬직하다. 들뜬 껍질 하나가 떨어지더니 이내 하얀 수피가 드러난다. 딱지를 뗀 자리는 곧 피가 점점점 배어 나올 듯 희다. 그 자리는 서서히 푸르게 변하다가 갈색으로 마르고 다시 탈피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근사한 나무가 되어간다. 하늘에 오르기 위해 돋아난 비늘처럼.


상처 같은 흰소나무 수피



봄이면 껍질이 벗겨지며 스스로 탈피를 하며 새로운 수피를 만들어낸다. 수백년이 지나 성장이 멈추면 탈피를 멈춘다고 한다.


갑각류나 곤충같은 외골격을 지닌 것들은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탈피가 필요하다. 기존의 외피를 벗어던지면 유연한 몸이 되어 위험에 노출되는 시기임에도 이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더 딱딱한 외피를 형성하기 위한 필수의 과정인 것이다.


미끈하게 뻗은 오목볼록 줄기를 쓰다듬고 있으니

자주 자신을 돌아보고 탈피하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나의 글쓰기도 그런 외피들을 탈피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부사를 없애는 탈피

쓸데없는 판단과 양념들을 털어내는 탈피

주제와 어긋난 샛길로 빠진 이야기들을 과감하게 벗어버리는 탈피.

더 단단한 글을 쓰기 위해 탈피의 과정은 꼭 필요하리라.


줄기 따라 따라 고개 들어 올려다보니

하늘 높이 뻗은 가지에 푸른 솔잎들이

더 잘 살피고 다니라고 빳빳하게 삐치며

훈계하는 것만 같다.


귀한 소나무, 백송이 있는 산책길.

갑자기 그 길이

눈부시게 고고해진다.



그곳에 백송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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