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읽다가 본 영화
고다 아야의 <나무>는 13년 동안 홋가이도에서 남부 야쿠시마까지 직접 관찰하며 나무의 일생을 더듬은 글이다. 책을 읽다가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나온다고 하여 영화를 먼저 본다. 주인공이 언제 그 책 <나무>를 사러 헌책방에 갈지 궁금해하면서.
영화는 ‘패터슨’과 비슷하다. 날마다 달라질 것 없는 일상을 이어간다. 커다란 사건도 반전도 일어나지 않는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 시부야 공중화장실 청소부다. 날마다 기분 좋은 아침을 맞으며 일어나 이불을 개고 작은 식물들에게 물을 준다. 식물이 가족이다. 작은 차를 타고 일터로 가서 담당한 화장실을 아주 정성껏 진심을 다해 청소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근처 신사 나무그늘에서 간소한 점심으로 우유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높다랗게 자란 나무들을 올려다본다. 푸르른 하늘, 햇살에 반짝이는 나무를 오래된 필름카메라로 찍는다. 퇴근하면 목욕탕과 동네 단골 식당에 가고 밤이면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 책을 읽는다. 그러다 졸기도 한다. 밤마다 꿈속에는 낮에 찍은 나무의 반짝이는 그림자 잔상이 흘러간다. 그렇게 하루를 마감한다.
영화 중반부를 넘어서야 드디어 헌책방 장면이 나온다. <나무>를 집어 서점 주인에게 간다.
“고다 아야, 이 분이 평가가 덜 된 점이 있죠. 같은 단어도 이 분이 쓰면 다르다니까요.”
고다 아야 뿐만 아니라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1>에 대해서도 불안과 공포에 대한 그만의 관점을 말하는 서점 주인이 돋보인다.
(책방 안 수많은 책들 중에 어느 책을 가져가도 그 책과 작가에 대해 '적확하게' 이야기하는 헌책방 작가님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화장실 청소부이므로 당연히 화장실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각기 다른 형태의 화장실 디자인이 참 독특하다. 우리나라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일률적인 화장실이 아니다. 세상에! 저렇게 화장실이 예쁘다니.
컬러풀한 유리로 디자인된 근사한 화장실이 특히 눈에 띈다. 화장실 문을 닫고 잠그면 투명했던 유리가 불투명 유리로 변한다. 다시 도어록을 열면 문이 투명해진다. 영화를 뚫고 들어가 보고 싶은 화장실이다. 검색해 보니 'THE TOKYO TOILET' 프로젝트 일환으로 건축가들이 지은 화장실이다. 반 시게루, 안도 다다오 작품도 있다. 어쩐지… 아름다운 화장실을 보고 있으려니 '화장실 투어'가 있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영화에는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들을 담은 아름다운 영상이 유난히 많이 나온다.
'코모레비'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라고 한다.
찰나의 그 아름다운 순간.
우리말에 '윤슬'이라는 말은 있는데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눈부신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들이 일렁이는 모습을 담은 한 단어는 아직 모른다. 그 순간을 나타내는 단어가 있기는 한 걸까.
나뭇잎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아름다운 순간. 고개를 들면 햇살 받은 나뭇잎이 초록과 연두와 노랑이 겹쳐지고 빗겨 나며 투명하게 반짝이고, 고개를 숙이면 나뭇잎으로 만들어지는 작은 동그라미들이 끊임없이 겹쳐지고 일렁이며 맑은 영상을 만든다. 그 순한 그늘 아래 서면 말할 수 없이 편안해진다.
정성껏 청소하고, 정리하고, 나무를 아끼며 ‘지금’을 사는 영화 속 히라야마의 삶의 태도가 나뭇잎에 부서지는 햇살처럼 반짝인다.
오늘을 사는 모든 이들의 나날도 코모레비처럼 빛나는 찰나들이 이어지길...
쏟아지는 햇살에 나뭇잎이 반짝이는 순간들이 이어질
싱그런 계절을 기다리며 다시 책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