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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Nov 01. 2023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

MBC '생방송 오늘 아침'이란 프로그램에서 리포터로 활약하던 김태민씨가 어제 아침 방송을 마친 뒤 집에서 낮잠을 자다가 갑자기 운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갑작스런 그의 죽음이 황망해 부검까지 했는데, 결과는 뇌출혈이라고 한다.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죽음을 생각하며, 제일 이상적인 죽음은 갑작스런 급사라고 생각해왔다. 본인과 가족, 서로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1년간 암투병을 하며 시한부 삶을 살다가신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더랬다. 그런데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하루 아침에 갑자기 사라진다는 건, 내가 겪어보지 못한 또다른 종류의 슬픔일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든다.


몇일전 친누나가 병원에 입원을 했다. 입원 하자마자 병원에서 MRI를 찍고 뇌 검사까지 하는 걸 보고 뭔가가 많이 안좋다는 걸 직감 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10년 전 아버지가 하루 아침에 췌장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나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엄마와 누나, 그리고 누나에게 딸린 조카 둘 뿐이다. 나는 이제 그 흔한 친구 조차도 한명이 없다. 제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들로 가득할 뿐이다.


사는게 몸서리 날 때가 있다. 잘해보려고 하는데 무너지는 때다. 젊은날 어렵사리 대기업에 입사해서 아버지께 건넨 첫마디가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였다. 맨날 어디 한쪽은 찌그러진 이상한 똥차만 구해서 타고 다니시는게 보기 챙피해서 내가 월급 모아서 '소나타'라도 사드리겠다고,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불과 1년만에 투병이 시작됐고, 평생 멀쩡한 차는 구경도 한번 못하시고 생을 마치셨다.


이제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고 가족만 바라보고 살겠다고 굳게 다짐을 하며 살려는데, 또한번 가족으로부터 이런 상황이 닥치면 온 힘이 빠진다. 트라우마 같은거다.


생각해봤다. 내가 갑자기 드러누우면 내 옆에 누가 있을지. 병상에 누워있을 나는 기자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며, 아파서 영어 통역을 해 줄 힘도 없을텐데. 따라서 나한테 득 볼 일은 전무할텐데, 그땐 누가 옆에 있을까.


엄마랑 누나다. 회사에서 짤리건 말건 온종일 내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을 것이며, 간이 필요하면 간을 떼어줄테고, 신장이 필요하면 고민도 없이 떼어줄 그들이 가족이란 말이다.


앞으로 남은 우리 가족에게 닥칠 불가항력적인 슬픔이 있다면 온전히 나에게로만 집중 됐으면 좋겠다. 아픔, 슬픔, 나는 잘 참을 수 있다. 이겨내지 못할 아픔이 찾아오면 다시 제주도로 떠나도 되며, 술과 수면제에 취해 죽은듯이 잠을 청해도 된다. 책 한권만 들고 유럽으로 날아가 산티아고 길을 몇달이 걸리든 종일 그렇게 걸어도 되고, 산속 사찰에 가서 스님들을 붙잡고 실컷 울어도 된다. 나는 그렇게 버텨왔고, 앞으로도 끄떡없다.


그런데 우리 가족만큼은 안된다. 내가 없으면 안된다. 가족을 잃는 슬픔, 그건 나만이 버틸 수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한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그 인연이 가족이란 걸, 너무도 늦게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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