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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Nov 12. 2023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중학교 때 교회를 믿던 친구 손에 이끌려 처음 교회를 갔었더랬다. 그리고 다니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한달 가량 지났을 무렵인 12월31일 날 연말 행사가 있다며 교회를 다시 찾았다. 우연이였는지, 친구의 노림수였는지, 해의 마지막 날은 어김없이 내 생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믿음도 없는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던 찰나였다. 예배당에서 고운 피아노 선율과 함께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울려퍼졌는데, 일면식도 없는 스무명 정도 되는 교회 사람들이 생일 당사자인 나를 위해 불러준 것이다.


그렇게 자리에서 혼자 덩그러니 일어나 꽃받침 형상을 한 사람들로부터 주인공이 되었고, 어쩔줄 몰라하는 나를 향한 노래의 향연은 끝까지 계속 되었다.


처음이였다. 사랑받는 기분.

이런거구나 싶었다. 사랑을 받는다는 건.


그렇게 강산이 세번 변하고 지구가 태양을 몇바퀴나 돌고 돌았을 시간은 흘렀고, 나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 사이 사랑도 참 많이 했고, 그에 비례한 이별도 똑같이 이루어졌다.


돌이켜보면 공장에서 찍어낸 기계처럼, 그 어떤 변수없이 입력된 알고리즘대로 순응하며 살았던 것 같다. [만남-사랑-이별 / 열댓번 반복할 것] 나에겐 이런식의 참 뭐같은 알고리즘 값이 입력되었는데, 그 입력값을 거스르지 못하게 된거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거스르지 못하면 시작하지 않으면 될것 같다는 생각. 요즘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할 때 저 사람은 얼마나 좋은 사람일까 기대하기보다, 얼마나 이상한 사람일지 경계부터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내가 찾은 최선책은 관계의 시작을 하지말고, 가급적 사람들과의 대화도 자제하자는 거에 이르렀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사회가 이상하다. 가깝게는 친구 관계, 혹은 작은 모임에서도 뭔가 이상 기운이 늘 감지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는 그 한 마디를 하는 사람을 나는 근 10년간 본 적이 없다. 제 멋에 살던 사람들이, 오늘날엔 넘쳐나는 정보까지 필터없이 모두 흡수하다보니 왜곡된 지식의 함유량까지 높아졌다. 그래서 이제는 대학교수는 차치하고 저명한 지식인의 말들도 소용이 없게 됐다.


이 지경이 됐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 아무렇지 않게 꾸역꾸역 살아가는게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찾은 차선책은 가급적 혼자 살자는 다짐이다. 가정을 꾸리는게 최선이라는 어른들의 말에 흔들리지 않아야 될것이며, 가정을 꾸리며 살고있는 친구들의 삶을 부러워하며 현혹되지도 않아야 될것 같다.


오늘 서울의 한 독자분께서 남해쪽으로 여행 가시는 길에 안동에 들리셨는데, 급하게 오느라 빈손으로 왔다며 대형 커피믹스를 한박스 선물로 주고 가셨다. 박스 위에는 ‘임기헌 작가님께’ 하며 작은 손글씨도 쓰여져 있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맞다. 나는 오늘도 내 삶 속에서 이렇게 사랑을 받고 있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오늘도 여실히 증명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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