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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Nov 14. 2023

새 옷

특파원으로 발령받아 영국에 간다며, 몇년간 이제 보기 힘들것 같다는 서울의 한 후배가 멋진 겨울옷을 선물로 보내왔다. 내가 태어난 날을 내 스스로 결정하진 않았지만, 매년 해의 마지막 날이 생일인 바람에 이 친구도 잊고 싶어도 잊을수가 없다며 이렇게 미리 또 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나에게 최고의 축하란 마음 편한 누군가와 칼국수에 막걸리 한잔으로도 족할 뿐인데, 요즘 사람들은 생일 당일의 하루를 넘어 '생일 주간'이라 칭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본인 생일을 국가 기념일에 버금갈 정도의 화려한 파티들로 기념하는 모습도 경쟁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격세지감' 그 이상을 느끼게 된다. 나 같은 사람으로써는 그들이 동경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어떤 기쁜 날이라도 누군가와 밥 먹는 시간 30분이면 족한데, 그 날을 일주일 이상 연거포로 즐길 수 있다니..!! 나에게 요즘 사람들은 그저 '로망'으로 보여질 따름이다.


오늘 선물받은 옷이 참 예쁘다. 과거 기자 생활을 할 때야 정부 각료를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의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반불가적으로 꾸미고 다니느라 옷도 참 많이 사입었던 것 같다. 그 후 10년 동안은 옷 한번 산 적이 없었지 아마. 온종일 돈까스를 튀기고, 학교 식자재 납품을 하고 있는 나에게 벙거지 츄리닝 한벌이면 십수년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맡은 새옷 내음이 향기롭다. 아껴 입어야 겠다. 되도록 돈까스 기름 냄새가 쉬이 묻지 않도록 아끼고 또 아끼며 영국으로 떠나는 예쁜 후배의 정성을 헤아려야겠다.


과거 영국에 출장을 갔을 때 어느 갤러리에서 본 윌리엄 터너의 작품이 생각난다. <눈보라: 항구 어귀에서 멀어진 증기선>이라는 작품이다.


멀어진다는 것이 때로는 참 아프다. 늘 다음을 기약하지만,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 그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기억해놓는거다. 무작정 그 사람의 손을 잡고, 그 사람의 무릎을 베고 잠깐 누워있는거도 괜찮겠다.


'그리워 하면서도 한번 만나고는 못만나게 되기도 하고, 평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만나고 살기도 한다'


언제나 생각컨데, 우리사는 세상의 인연은 참 우습다. 갈등과 싸움의 연속이며, 이 후엔 자존심이 굳건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 수도 없는, 계속되는 반복이다. 평생을 못 잊으면서도 만날 수 없는, 결국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오늘은 기필코 새 옷을 입고 퇴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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