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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Nov 16. 2023

고3을 위한 나라

어제 밤늦게 누나랑 카톡으로 수능에 관해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더랬다. 큰 조카도 이제 3년만 있으면 수능을 봐야되니 남의 일이 아닌게 되버린 셈이다. 나는 넌지시 속마음을 얘기했다. 서울-연고대나 이화여대 정도 갈 실력이 아니면 서울에는 절대 보내지 말라는 거였다.


사실 지방에 있는 친구들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겠지, 하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여전히 대다수다. 지방 학생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수능을 잘봐서 서울 거점 대학으로 진학을 하던지, 아니면 서울 내의 기업에 취업을 하면 되는 식이다.


어찌보면 쉽다. 서울에도 명문대가 아닌 변방의 대학들이 얼마나 많겠나. 취업도 마찬가지다. 꼭 대기업이 아니여도 편의점 알바를 한다는 명목으로 서울로 진출할 수도 있는거다. 실제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방 사람들은 서울에 연고가 없기 때문에 ’질‘을 따질 수 밖에 없다. 그 배경에는 부모의 경제력과 당사자의 자립도가 자리한다. 요즘 서울권 사립대학 등록금은 한 학기에 600만원이 넘어가는 걸로 알고 있다. 그리고 자취방을 구해야 하며, 용돈도 필요하다. 그것 뿐이랴. 매일 밥도 사먹어야 되며, 교통비도 무시를 못한다. 그럼 일단 한학기에 기본 1,000만원이 지출된다. 1년이면 2,000만원, 4년이면 8,000만원, 대략 1억 정도가 소요되는 것이다. 아이가 둘이면 2억이다.


그렇게 4년간 집안을 말아먹을(?) 정도의 자본을 투입해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졸업한다 해도 취업이 잘 안되는 요즘이다. 상황이 이럴진데, 무조건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목표를 이루려 이름도 모를 변방의 대학을 굳이 가겠다고? 글쎄다. 요즘 골프나 승마를 취미로 삼는 젊은 부모들이 넘쳐나니 그 재력으로 귀한 자식들의 성화를 어떻게 이겨낼지, 결혼도 실패한 내가 어깃장을 놓진 못할 것 같다.


다만 가급적이면 지방 학생들은 지방 거점 대학을 가되, 굳이 서울로 가고 싶다면 취업을 그쪽으로 목표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학생들이 종종 대학의 낭만을 꿈꾸는데, 낭만은 어느 대학에 가도 있다. 서울에만 있는게 아니다. 캠퍼스를 걷다 첫눈에 반한 이성이 생긴다면, 그 순간부터 온 세상이 낭만인거다.


그렇게 누나와의 대화가 마무리 되어갈 무렵, 누나가 넌지시 던진다. ”설마 올해 수능날엔 또 경찰차 타거나 학교 잘못찾아가거나 하는 정신나간 놈(?)들 없겠지?“하며. 나는 대답한다. ”내일 오전 뉴스 봐봐라. 정신나간 놈들 무조건 나온다. 하하“


그렇게 오늘 수능날이 밝았고, 어김없이 학교를 잘못찾아가고, 경찰과 소방관을 못살게 구는 학생들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이런 생각이 든다. 공권력이나 공공기관을 설립 취지와 전혀 상관없이 지각 수험생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나라가 전세계에 우리나라 말고 또 있을까? 하는.


우리나라는 얼마나 친절한지, 수능 하루전에 전국 학생들을 해당학교에 소집해 수능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친절히 설명도 다해준다. 지하철과 대중교통 시간 간격을 손봐주기도 하며, 영어 듣기 시간에는 비행기 이착륙까지 금한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노력을 조롱이라도 하듯, 그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정신을 못차린다. 이런 학생은 앞으로 어떤 진로를 택하든 불보듯 뻔하게 능력미달이란게 보이지만, 저들 부모는 뭐하는 사람들일까. 늦잠자고 지각한게 뭐가 자랑이라고 112나 119에 전화를 할 수 있을까. 나도 회사 다닐 때 숙취에 지각할 뻔 했던 경우가 있었는데, 112에 전화해 순찰차나 태워달라고 해볼껄 그랬나보다.


오늘 영국의 한 외신 뉴스에서는 우리나라 수능날을 이렇게 묘사했다. ‘대학수능시험, 대한민국을 멈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고, 고3을 위한 나라만 존재하는 듯한 대한민국의 민낯이 참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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