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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Nov 26. 2023

술과 장미의 나날들

스위스 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한 어느 작은 바였다. 손님은 나와 영국에서 온 부부, 그리고 주인 할아버지가 전부였다. 그림같은 풍경과 시간 속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들은 그렇게 단숨에 친구가 됐다.


시간은 자정을 향해갔고, 우리는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 축구와 북한과 한국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가며 깊어가는 스위스의 밤을 맞이했다. 눈쌓인 알프스 능선 너머로는 무수한 별들이 수를 놓았고, 이내 주인 할아버지도 가게 문을 닫고 우리 자리에 합류를 했다.


스위스, 영국, 한국까지, 그렇게 3국이 하나됨을 기념하자며 주인 할아버지는 특별한 날 마시려 감춰두었다던 ‘참이슬’ 소주를 꺼내셨다. 어찌나 반갑던지, 나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고 영국 부부에게 소주에 대해 설명을 해드렸다. 이 후 작은 잔에 소주 한잔씩을 나눠담은 우리는 내가 가르쳐준 한국말인 “위하여”를 외치며 잔을 비워냈다.


그날의 꿈만 같은 기억이 오늘 밤 아스라히 떠오른다. 무수한 나라 중에 스위스에서, 그리고 그날 밤 산자락에 위치한 작은 바에서 영국에서 온 부부와 주인 할아버지와 함께 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살아오며 우연한 확률을 도외시 했고, 삼라만상 이라고 일컫는 우주 질서를 곡해하며 바라본건 아닌가 싶어진다. 사려깊지 못한 지난 날들도 깊은 후회로 남는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쉬이 인정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퇴근길 혼자 동네 술집에 앉아 쓸데없는 묵상에 잠겨보지만, 정서적 안식처가 되지는 않나보다. ‘그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하는 노랫말이 구슬프게 다가온다.


어느덧 한 해를 돌아보는 세밑이다. 술과 장미의 나날들은 그렇게 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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