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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Nov 29. 2023

그 놈의 결혼, 또 결혼

얼마전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삼촌하고 막걸리를 앞에 두고 얘기를 나눴더랬다. 예기치 못한 결혼에 관한 얘기였다. 이혼한지 6년 정도가 됐는데, 그 사이 삼촌이 다시 결혼하라는 얘기는 한번도 한 적이 없어서 나도 뜬금이 없었다.


앞뒤 근거도 없다. 무조건 다시 결혼 하란다. 무슨 놈의 애가 결혼해서 가정 꾸릴 생각도 안하고 그렇게 혼자 살거냐고, 정신머리가 나갔냐며 다그친다.


나는 되물었다. 아니, 나 혼자 조용히 잘 살고 있는데 그동안 아무말도 없더니 갑자기 왜 그러냐고.


삼촌은 그런다. 그 동안은 내가 아파할까봐, 내 눈치 때문에 아무말도 안했다며. 그런데 마흔두살이 되도록 멀쩡한 애가 혼자 있으니 이젠 화가 치밀어 오른단다.


얼마전 할머니 생신 때 마을 사람들을 불러놓고 잔치를 했는데, 그 날도 일부러 나를 안불렀다고 한다. 집안 장손이 이렇게 혼자 있는게 동네 사람들 보기 챙피했단다.


얘기를 엿듣던 엄마도 옆에서 거든다. 다 치워라, 엄마 속 뒤집어 지든 말든 너도 그냥 혼자 살고 엄마도 혼자 살고, 이렇게 살다가 죽잔다.


할 말을 잃었다. 반박할 생각도 없었다. 당신들 말씀이 어쩌면 다 맞기 때문이다. ’나 혼자 산다‘라는 이 시대의 기치를 명분 삼아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피하기도 싫었다. 나도 궁상맞게 중년의 나이에 혼자 살기는 싫기 때문이다.


해서 이혼 후에 돌싱녀 뿐만 아니라 애 딸린 유부녀도 만나보고, 다소 어린 친구도 만나보며 그렇게 시간을 흘겨보내도 봤다. 그들로부터 사랑도 받고, 마음을 주려고도 애써봤다. 그런데 잘 안된다. 어떡하나 이걸. 마음도 안가는 사람과 어떻게 또 한 이불을 덮고 살아가라는건지, 이해가 잘 안된다.


내가 그 많던 친구들을 다 차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돈까스나 튀기며 사람들과 연을 끊고 사는 이유를 말해 뭐할까 싶다.


모르겠다. 지금도 정말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그런데 내 힘으론 이제 안되는 걸 어떡하나.


이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내 짝꿍 하나 못만났다는 건, 정말 쓰레기 같은 삶을 살아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좋은 대학 가고, 좋은 직장 다니는게 좋은 삶은 아니였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고,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 뿐인데, 이 마저도 바라마지 않아야겠다.


언제나 혼자서 바닷가를 거닐며 파도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다. 되도록 아무도 없는 곳이면 더할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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