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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an 29. 2024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오래된 상처까지 사랑하는 것

어머니가 저 멀리서 미나리를 캐왔다고 해서 오랜만에 엄마집에 들려 저녁을 같이 했다. 같은 도시에 살고 있어도 엄마집을 가는 날은 손꼽힐 정도로 적다. 낯선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고, 더불어 누나가 시집 가기 전까지 우리 네식구가 오붓이 함께 살았던 이 공간.


30년 가까이 지난 이 공간은 어쩌면 엄마의 반평생과도 그 궤를 같이 한다. 낡은 장판과 곳곳에 흠이 진 싱크대의 상처들이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굳이 물리적 공간의 소멸이 아니더라도 한 가정은 죽음과 이별로 파괴되고, 결혼과 출산을 거쳐 또다른 가정이 생겨나기도 한다. 옛것은 자연스레 잊혀지고,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며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않고 살아간다.


순리대로라면 다음은 우리 엄마 차례, 그리고 머지않아 내 차례가 다가온다. 근 2~30년 내에 일어날 일이다. 지구 나이가 60억년임을 감안하면, 이렇게 억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두어번은 더 겪어야 될 것이며, 혹은 직접 맞이할 수도 있는 죽음 앞에서 복받칠 감정과 고통은 또 어떡하란 말인가. 모든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이의 삶은 또 어떻게 치유 받을 수 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내 삶이 엄마까지 잃게 되면 어디까지 추락할지, 궁금하긴 하다. 추락하는 것에 날개는 있을지, 직접 겪어 볼 일이다.


즐겁게 식사를 하다가 엄마한테 넌지시 물어봤다. 아는 선배한테 제안을 받은게 있는데, 내가 해외에 가서 살면 어떨지. 이번엔 과거의 유학이나 연수처럼 기간을 정해놓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살 작정으로 갈건데,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침묵이 흐른다. 1분의 침묵. 그 고요함을 깨고 엄마는 나즈막히 얘기한다. 하고 싶은데로 하라며.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너무 슬플 땐 눈물이 흐르지 않는다. 10년전 영안실에서 마지막으로 아버지 시체를 보고 지갑에 든 돈을 몽땅 털어 아버지 손에 노자돈으로 쥐여드렸다. 그리고 화장을 한 뒤 한줌의 재로 남겨진 아버지를 묻는 순간에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눈물을 참기가 힘들다. 어두컴컴 한 방에 혼자 있을 엄마 생각에, 지금도 아빠가 보고싶다는 엄마 모습을 볼 때면 견디기가 힘들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오래된 상처까지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닳고 닳은 우리 엄마의 상처까지 사랑하기가 너무 힘이 든다.


‘짠’하고 모든게 하루아침에 끝이 났으면 좋겠다. 엄마는 엄마의 별로, 나는 나의 별로 돌아가 이제 그 무엇으로도 다시 태어나지 않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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