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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Feb 09. 2024

설명절 모퉁이에서

명절을 맞이하는 재래시장의 하루는 그 어느 때보다 시끌벅적 하다.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대목 성시를 이루는 가게 상인들은 저마다의 노하우로 손님들의 이목을 집중 시키기도 한다.


나도 어느새 시장 사람이 다 됐나보다. 오늘은 얼마나 바빴던지, 배달 들어오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쉬고 있던 엄마를 가게로 호출 했다. 그래도 계속 밀리는 바람에 손님분들께는 핀잔을 듣기도 하며, 그렇게 재료가 모두 동이나고 나서야 마칠 수 있었다.


밤이 되자 북적이던 시장통은 길고양이들의 안식처로 변했다. 고요하다. 가로등의 내리쬐는 불빛이 먹이를 찾는 고양이들의 등대가 되어주는 것만 같다.


안동의 번화가는 명절 밤이면 서울의 홍대 거리 부럽지 않게 많은 젊은이들로 가득차 있다. 1년에 두번, 설날과 추석 전날이 대게 그렇다. 객지 생활을 하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마음의 안식처를 찾은 마냥 편안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도 그랬지 아마. 오랜 객지 생활을 하며 이따금씩 찾던 내 고향 안동이 얼마나 안락했던지.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엄마가 까주던 귤을 한움큼씩 집어 먹으며 나누던 이야기와 명절의 광경들이 아득히 떠오른다.


명절때면 저 멀리서 찾아오는 삼촌과 고모네 가족, 그리고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사촌동생들도 기다려지곤 했다. 모여서 함께 윷놀이를 하고, 할머니 눈을 속여가며 장난을 치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미소가 감돈다.


좋았다. 곁에 있어준 가족들 덕분에, 나는 정말 행복했다.


이젠 명절이 다가와도 가족, 친구 하나 없는 삶이 됐지만 많은 기억들이 언제나 나를 지탱해준다. 기억은 항상 그 자리에 있으니까, 나는 또다른 명절이 찾아와도 끄떡이 없다.


봉식당. 벌써 5년차가 된 이 돈까스 가게에도 정이 참 많이 들었나보다. 이제 내 본래의 자리로 천천히 돌아가려 하니 어떻게 처분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장사를 하기 전엔 몰랐다. 가게에 설마 정이 들까 했다. 단골이 되고, 형동생이 되기도 하는 손님들과의 유대도 망설여지는 작별에 큰 지분이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이번 연휴동안 읽을 책 한권을 고르려 몇일전엔 도서관을 잠깐 들렸는데, <너를 찾아서>라는 추리 소설을 골라봤다. ’끝내지 못한 작별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슬픔과 고통에 대한 이야기‘, 라는 인트로가 와닿았다. 오늘은 책을 읽고, 맥주 한잔 마시며 넷플릭스 영화 한편을 보면 되겠다.


그 언젠가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기억한다. 고요한 인내와 연민의 시간들을 아직 정점까지 떠오르지 않은 그 작은 공과 함께하고 싶다.


’알라신을 믿되, 타고 갈 낙타는 묶어두라‘ 했던 하디스의 가르침 처럼, 지혜로움도 함께 꿈꾸는 설명절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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