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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Feb 21. 2024

엄마와 함께 왈츠를

1년에 꼭 한번 꽃집을 들리는 날이 있다. 엄마 생일 때다. 엄마 생일인 오늘, 엄마는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출근을 한듯 보였고, 나는 엄마 집에 들려 화장대 위에 조용히 꽃을 올려두고 나왔다.


또 1년에 한번 손편지를 쓰는 날이 있다. 매한가지로 엄마 생일 때다. 이제 긴 글은 엄마가 읽기 힘들 수 있으니 가급적 짧은 글로 내 마음을 전하려 애쓰곤 한다. 무뚝뚝한 나는, 여전히도 사랑한다는 말이 낯설다. 그래도 해야겠다. 노력하다 보면 나도 언젠간 다정한 사람이 될수 있을거라 믿고 싶다.


생일날 그 흔한 미역국 한 그릇, 혹은 가족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먹는 밥한끼가 엄마에게는 너무도 그리울 것만 같다. 불꺼진 컴컴한 집에 홀로 퇴근해 길고 긴 밤을 지새우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외로운 인내의 시간들을 우리 엄마는 어쩜 그렇게 잘 참았을까.


이 집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흔적, 누나와 나의 흔적까지 모두 짊어지고 살고있는 우리 엄마의 그리움은 어디서 보상 받을 수 있을까. 여전히 아플까. 밤마다 혼자서 목놓아 울지는 않을까.


그런 엄마를 두고 나는 뉴질랜드로 떠나겠다고 엄포를 놓고 말았으니. 괴롭다.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아서.


내가 생각한 인생은 이런게 아니였다. 기쁜 날 엄마와 함께 왈츠를 추고, 여름엔 아빠와 고기잡이 배를 타고 저 먼 바다로 나가는 삶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따뜻한 한 가정의 구성원이고 싶었다. 때론 말썽꾸러기이며, 때론 집안의 자랑이기도 하며, 그렇게 살아가는거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지나친 꿈이였던 거다. 지금 처한 현실이 답을 준 셈이다. 과정도 영 별로였다. 잊고 싶은 날들만 가득하니, 내 기억도 답을 알려준 거다.


오랜 침묵과 여백이 마음을 누그러뜨려 줄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해본다. 그 후엔 사랑하는 우리 엄마의 영원한 벗이고 싶다. 엄마가 품었던 씨앗들마저 짓이겨져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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