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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Feb 22. 2024

히포크라테스의 눈물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혹은 인간의 안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직종에서는 보통 선서나 맹세 같은 의식을 치른다. 보다 사명감을 갖고, 구성원 스스로 인간 생명과 존엄에 대한 예를 다하기 위해 치르는 자의적 의식이라고 볼 수 있겠다.


대표적으로는 의대생들이 본과 졸업 후 치르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있다. 그리고 간호대 학생들의 나이팅게일 선서와 한의대의 허준 선서, 약대의 디오스코리데스 선서 등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소방관에게도 복무 신조처럼 내려오는 ‘소방관의 기도’가 있는데, 1958년 미국 소방관 스모키 린이 쓴 시(詩)에서 비롯됐다. 기도는 다음과 같은 다짐으로 소방관들에게 사명감을 되새겨 준다.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제 목숨이 다하게 되거든 부디 은총의 손길로 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아 주소서”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의사들과 정부의 대치 양상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오늘 기준으로 전국의 전공의(2~3년차 레지던트) 약 70%가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종합병원은 개점휴업 상태가 됐고, 말기암 환자를 비롯한 위중증 환자들은 수술 날짜가 미뤄지고 취소돼 병원을 찾지 못하고 뺑뺑이를 돌고 있다고 한다.


정부 측은 의대 증원 2,000명도 최소한의 수치라며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의협 측은 전면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국민들의 상식을 들여다보고 싶다. 간단하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누구나가 ’의사가 늘어나면 좋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더 갸우뚱 해진다. 여론조사만 봐도 증원에 찬성하는 국민이 80%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온다.


그런데 이런 국민 상식을 뒤엎는 의사들의 입장을 들여다보면 단숨에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먼저 2,000명을 증원해 봤자 외과나 응급병상 등 의사들이 기피하는 과로 배치가 되지 않고, 피부과나 정신과 같은 편한 과로 몰리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거다. 그리고 현재 ‘빅5’병원 전문의 연봉이 3~4억 정도 되는데, 공급이 몰리면 자연스레 의사 연봉이 낮아지는 우려도 있다고 한다. 하나 더,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인구 감소로 인해 의사가 그만큼이나 필요치 않다는 궤변도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보통의 국민들 입장에선 의사들의 주장을 아무리 헤아리려 해봐도 의아해 진다. ’의사들 본인들도 항상 과업과 야근에 불만이던데, 숫자를 늘리면 서로 좋은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제 한 의사는 의대 증원을 늘여서는 안된다는 근거로 학교에서 성적이 20~30등 하는 학생은 국민이 원치 않을거라는 발언을 했다. 그의 말도 일리는 있다. 서울대 법대 보다 가기 힘든 곳이 지방대 의과대학이다. 그러니 굳이 성적순으로 나열한다면 그의 말이 틀리지는 않아 보인다.


그런데 전해듣기로는 학창시절 성적이 아니더라도 의과대학은 졸업이 훨씬 더 어려운 걸로 정평이 나있다. 말인 즉슨, 학창시절 성적으로 가르지 않아도 대학 과정 중의 실습과 평가 등으로 의사의 자질을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는 얘기다. 평가 미달 된 학생들은 재수강을 하던지의 방법으로 졸업을 시키지 않으면 될 일이다.


그 의사의 발언에서 엘리트 카르텔의 끝을 보는 것만 같았다. 우리는 대한민국 1등 엘리트 집단이니까, 정부와 국민은 절대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의사협회 간부의 말도 실언이 아닌 것 처럼 느껴진다.


”우리 모두 생명을 존중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선후배 형제로써 우리를 믿고 의지하는 사랑하는 시민들을 위해 소명을 다하자“라는 결기와 사명감은 어디로 간 걸까.


히포크라테스는 선서의 말미에 이렇게 다짐했다. ”만일 내가 이 선서를 어기고 약속을 저버린다면, 나의 운명은 그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일생 동안 의술을 베풀며,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의사분들의 운명이 국민들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치닫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그 운명의 전선 위에 서있는 그들의 무운(武運)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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