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기헌 Aug 21. 2022

무지막지(無知莫知)

오늘 급상승 검색어에 '심심한 사과'라는 단어가 최상위에 올라있어 어느 유명인이  뭔가를 잘못했나 싶어 들여다봤다. 내용은 이렇다.


서울의 한 카페에서 작가 사인회가 취소되는 바람에 카페에서 사과문을 올렸는데, 그 문장 중에 '심심한 사과'라는 단어를 일부 이용자들이 '지루하다'는 뜻의 '심심한'으로 오해하면서 불거진 일이였다. 원래 뜻은 ‘심심한(甚深한,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한)’을 말한다.


이러한 반응들이였다고 한다.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하다. 너네 대응이 아주 재밌다” “심심한 사과 때문에 더 화난다. 꼭 ‘심심한’이라고 적어야 했나” “어느 회사가 사과문에 심심한 사과를 주냐” “앞으로 공지글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 올리는게 어떤가” 등등.


'대다나다(대단하다)'라는 말 밖에는 떠오르질 않는다. 극지방에서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원시부족들이 봐도 비웃을 것만 같다. 21세기 첨단 선진국을 꿈꾸고 있는 대한민국 수준이 이러한 걸 이웃국가에서 알까봐 걱정스럽기도 하다.


얼마전에는 '사흘'과 '나흘'이 헷갈려 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고, 몇일전에는 '금일'과 '금요일'을 혼동해 저들끼리 치고받고 싸웠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될까. '문명' 국가에서 '문맹' 국가로 퇴보하고 있는 지금 시대를 우리는 어떤 식으로 이해 할 수 있을까.


과거에는 1년에 사람들이 책을 몇권 정도 읽느냐를 조사하는 여론기관이 성행했다면, 요즘 시대에는 평생동안 책을 몇권 읽는지 조사하는 여론기관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이유는 명료하다. 평생동안 책을 한권도 안읽는 이들이 수두룩 하기 때문에 이런 조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후자의 삶을 살았을 것 같긴 하다. 책을 뭐하러 읽고 공부를 하나. 한 아이만 낳아 소중하게 키우자는게 시대의 구호가 되버린 요즘은 그저 자식이 무슨짓을 하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하며 외치고 있고,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물려줄 자산도 많아서 공부 할 필요가 없어졌는데.


자나깨나 유튜브를 보면서 평생을 보내면 될 일이다. 이내 그건 현실이 됐다. 라면 20봉지를 한끼에 소화해내면 금새 유명인이 되고 월에 2~3억은 우습게 버는 시대가 되버린 것이다.


보통 어느 분야든 상위 5%의 국민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나라를 위해 이바지 한다. 기술과 과학 발전을 이룩하고, 우리 삶의 편의를 가져다 준다.


유튜브 분야에서 상위 1%에 속하는 라면 20봉지를 먹는 이들이 우리 삶의 향상을 위해 이바지 하지는 않는다. 그들 자신만의 배를 불리며 돈벌이를 할 뿐이다. 그래도 우리는 과학자들이나 연구원들보단 '프로 먹방러'들을 보며 환호를 한다.


스티브 잡스가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온종일 연구실에 들어앉아 스마트폰을 발명하지 않았다면, 아인슈타인이 컴퓨터 조차 없던 그 시대에 상대성 이론을 도출해 내지 못했다면, 온종일 폰만 쪼물딱 거리며 쳇바퀴 같은 일상을 보내는 우리는 지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원시적인 삶을 살고 있었을텐데. 심히 아이러니 할 뿐이다.


'무지막지(無知莫知)'라는 말이 있다. '무지'는 말 그대로 모른다는 뜻이다. 당연히 배우지 못했다면 모를 수 있는거다. 괜찮다. 그런데 문제는 '막지'에서 비롯된다. 누구 말을 들으려고도 안하고, 모르는게 있어도 알려고 하지 않는 자세다. 자기 신념에 손상이 올까봐.


요즘은 그야말로 '막지(莫知)'스러운 세상에 살고있는건 아닌가 싶다. 정치야 원래 그렇다손 치더라도, 우리 사회 근간을 이루는 작은 커뮤니티 내에서도 할 말을 잃을 때가 많다. 할수 있는 말이 없을 때 펜을 잡고 글을 쓰려 했는데, 그러길 참 잘한거 같다.


나는 근래 참 '심심한 사흘'을 흘겨 보냈다. 사람들에게 이 문장은 또 어떻게 읽힐지 궁금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 미쳐서 살았고 제정신으로 죽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