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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Aug 29. 2022

친구에게

오늘 우연찮게  친구들의 SNS 보게 됐다. 우리는 태생이 시골 사람들이라 SNS  안하게 되는데, 시대에 편승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는지  친구들이 이렇게 SNS 하고 있는 줄은 나도  몰랐다.


한들 누가 뭐라하랴. 자기 PR시대이고, 사진 마다마다의 값어치가 있거늘. 해서 들여다봤더니 익숙한 사진들이 보인다. 내 사진과 이야기들이다. 대기업에 들어가 방송에 나오는 친구라느니, 토익 만점이라느니, 책을 출간 했다는 친구라느니 등등. (지금은 돈까스 튀기고 있다는 걸 언급해놓은 친구는 없었다.)


3~4명이 이런 이야기들을 본인 SNS에 올려놓은 걸 보게 됐다. 뭐 괜찮다. 친구니까. 먼 과거에는.


뭐라해야 될까. 친구? 내가 친구가 있었나?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 뒤 결혼식을 치른 후에는 친구라고는 개나 줘버렸는데, 그들이 말하는 친구는 무얼 뜻하는지 모르겠다. 본인들 개인 SNS에 내 이야기들은 버젓이 걸어놓고 말이다.


이왕 말 나온김에 기억을 되살려 본다. 33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참 많이 와줘서 고마웠다. 그리고 나는 장례가 끝난 후 일일이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표했다. 당시 장례식 룸이 비좁아 옆방을 더 빌렸고, 부조금만 수천만원이 됐으니 '상주' 경험을 처음하는 나로써는 슬플 겨를조차 없었다.


그런데 내가 친하다고 여겼던 수십명의 친구들은 와서 또 장난을 친다. 금액으로 누군가를 재단하긴 싫지만, 부조를 3~5만원 한게 태반이고, 장례식장에서까지 고래고래 소리치며 먹지도 못하는 술을 공짜라며 마셔댔더랬다.


나는 아버지의 이른 죽음에 마음이 너무 아픈데, 친구들은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속이 아파 보였다. 그래서 3일장 내내 생각이 들었다. 뭔가 잘못 되고 있다라는 걸.


그리고 3년 뒤 운좋게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만나 어렵사리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숨길것도 없지만 결혼식에 온 사람은 다 알거다. 결혼식 시작부터 끝날때까지 나는 온종일 울었다. 결혼식 진행이 안될 정도로.


어렵게 성사 된 결혼식에 대한 애틋한 감정도 있었지만, 신랑 입장 때 또렷히 보인 부모님 석의 텅빈 아버지 자리 때문이였다. 그리고 화사하게 들어오는 나의 신부를 보며 그 눈물은 홍수가 되어 얼굴에 번지기 시작했다. 양가 가족 모두가 마음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다.


그런데 친구들은 또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회사 근무여서 못간다", "부모님하고 등산가야 되서 못간다.", "오늘 가게가 바빠서 못간다.", "오늘 아이가 아파서 병원가야 되서 못간다". 등등. 결혼식 당일 아침에 받은 문자들이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래도 저 멀리 서울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등지에 있는 선후배들이 많이 참석해 줬다. 가까이 있는 친구들은 모두 장난스레 인생의 한번뿐인 축제날을 조롱하며 희희낙낙 거렸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친구가 없다. 누군가는 한번도 겪기 어려운 두번의 큰 경조사를 겪으며 말끔히 정리하게 됐다. 이럴 땐 돌아가신 아버지와 이혼 한 전처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두 사람 덕에 양의 탈을 쓴 '개새끼'들을 모두 거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긴 말은 별로 하고 싶지 않다. 지금도 어디선가 나의 SNS나 카톡 모두를 들여다 보고 있는걸 잘 알고 있다. 이 또한 그들의 자유지만, 부디 내가 당신의 친구라고 여전히 거들먹 거리진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당신같은 친구들이 없다. 누군가의 인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경조사를 니들 따위에 의지한게 치욕스럽기까지 하다.


훗날 그대들 부모가 돌아가시면? 미리 얘기해주고 싶다. "내 조카들이 좋아하는 6천원짜리 마라탕 먹으러 가야되서 못갈거 같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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