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오랜만에 가게 문을 열었는데 적응이 잘 안되네요..ㅎㅎ 그럼에도 어떻게 알고 많이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음,, 뭐랄까요. 저는 참 복에 겨운건지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어린시절을 돌이켜봐도 무척이나 가난했지만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것 같아요.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엄마, 할머니로부터 말이죠. 한 반에 50명이 훌쩍 넘어가던 베이비부머 시대의 학창시절에도 반장, 혹은 부반장을 놓친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평생 받기만 한 이런 사랑과 관심들을 당연하게 여긴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커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이성이 날 동시에 사랑하는게 가능할까, 했는데 그 친구들도 날 마음에 두고 있는 거 였어요. 그래서 사랑을 키우고 반복했던 나날들을 생각하면 얼마나 영광이였는지요. 볼품없는 현재를 생각해보면, 그런 시간들이 꿈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받기만 했던 사랑을, 혹은 당연시 했던 그 사랑들에 대한 괘씸죄를 물어 저는 지금 이 지경이 된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한 평생 사는동안 딱 그만큼의 행복과 딱 그만큼의 불행이 결국에는 균등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항상 받는데에만 익숙해져 있는 저에게, 가혹한 벌이 내려진 셈인거지요.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저로 인해 ’이혼녀‘로 낙인찍힌 채 살아가는 전처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결혼 무렵 아버지를 여읜 저를 친아들처럼 대해주신 장인, 장모님께도 남은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겠습니다.
철딱서니 없이 살아온 많은 시간들에 대한 반성을 매일매일 곱씹습니다. 불혹이 넘은 후 단 하루도 반성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44살이 되었는데요, 남은 여생도 사람들 발길이 잘 닿지않는 그늘진 곳에서 홀로 묵묵히 살아갈 생각입니다.
아직 꿈이 많습니다. 이루고 싶은 일들도 많고요. 중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포청천 같은 멋진 판사도 되고 싶었고, 용감한 경찰도 어린시절 꿈꾸다가 결국엔 기자라는 직업을 현실적으로 이룰 수 있었는데요. 지금은 가급적 하늘 가까이 닿을 수 있는 뭔가를 꿈꾸고 있습니다. 파일럿 조종사 시험, 혹은 천문학을 공부하며 말이죠. 하물며 글도 열심히 써서 다음 책은 장편소설로 찾아뵙고자 하는 목표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혼자지만 이처럼 희망을 품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쪼록 저희 가게 손님분들과 제 책 독자분들도 설명절 가족분들과 함께 행복 가득한 나날들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빈말이 아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는 저의 진심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