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해 간다

by 임기헌

오늘은 병원 정기검진이 있어 가게 브레이크 타임 때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좀 걷고 싶어서다. 그렇게 귀에 이어폰을 꽂고 따뜻한 커피한잔과 함께 옛 도심을 가로질러 한시간 정도를 걸었다.


휑하다. 실핏줄 처럼 이어진 작은 골목의 상가에는 폭격을 맞은 듯 버려진 물건들이 널브러져 있다. 상가 뿐만이 아니다. 인구소멸 위기 단계로 지정된 도시라 그런지, 사람들도 영 보이질 않는다.


30년전 나의 중고등학생 시절 때에 이 곳은 사뭇 달랐다.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시내 한가운데의 어느 은행 앞은 만남의 장소였지 아마도. 폰도 없거니와 삐삐도 없던 그 시절엔 약속 시간에 맞춰 약속된 장소에 우두커니 서서 상대가 나타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렸었다. 우리는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않고, 막대처럼 가만히 서서 상대가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사람들의 숨소리와 수많은 기다림이 가득했던 이곳은 어느새 외로움이 가득한 황량한 도시가 되었다. 우리 모두가 바라지 않던 일이다. 슬픈 예감과 예기치 않은 미래는 어김없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향후 10년 후를 예상한다면 학교가 소멸하겠고, 인구는 현재의 15만명에서 8만명 아래로 줄겠지. 낙후된 동네는 흉흉한 공터로 변할테고. 이 또한 바라지 않는 미래지만, 손 쓸 수가 없는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어제 퇴근 무렵 친구 하나가 전화가 왔다. ”왜? 말을 해, 이 미친놈아“ 하고 나는 물었다. 친구는 ”그냥,, 뭐,,“ 하며 무뚝뚝하게 대답을 한다. 무슨 일 있냐고 물으니, 그제야 내 마음을 알겠다고 한다. ”응?? 무슨 개소리여? 이 X신 새끼야“ 하고 나는 다시 다그치며 물었다.


친구는 말한다. 몇년전 내가 우울증 약을 한아름 싸들고 혼자 제주도로 아무도 몰래 떠났을 때의 이야기를. 본인도 요즘 그런 마음이란다. 처자식한테 이런 말을 늘여놓을수도 없는 노릇이고, 마음이 갑자기 그렇다고 한다.


술 먹고 싶으면 술 마시자. 오랜만에 비싼 양주를 마시던지. 어디 바람쐬러 가고 싶으면 영덕에 바다보러 같이 가던지. 아니면 포항 가서 술한잔 하고 우리 누나네 가서 같이 자고 오던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곁에 있어주는게 전부여서 딱히 다른 말이 떠오르진 않았다. 친구는 됐단다. 다음에 보자면서 애들 재우러 그냥 집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멀쩡하지만, 멀쩡하지 않은 목소리 였다. 나는 잘 알 수 있다.


매일 똑같은 하루. 오늘도 내일도, 과거에도, 10년 뒤에도, 어쩌면 죽을 때 까지도 똑같은 하루.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이 삼시세끼를 때우고,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시간에 잠드는 사람들. 온종일 제 아이만 바라보며, 정작 본인의 삶과 꿈은 잃어버린 사람들. 아이는 커가며 제 삶을 찾아가고 앞선 세대는 그렇게 소멸하는 반복의 삶. 이즈음되니 우울증이 오지 않는 게 되려 이상한 삶일 것만 같다.


‘소멸 뒤 우리에게 남는 건 뭘까.’


소멸해가는 나의 고향을 둘러보며, 함께 소멸해가는 우리를 생각케 됐다. 나는 나의 고향과 힘에 겨운 나의 친구를 보고 있더라도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마냥 곁에 있어주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지만, 그걸로 충분할지 모르겠다. 넌 이야기 하고 난 웃어주고, 그러면 될까. 밤하늘을 보며 별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면 어떨까.


부디 아프지 마라.

keyword
이전 16화아직 여름이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