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나무 아래에서

by 임기헌

뭐 재미난 일 없을까. 아무도 없는 울창한 삼나무 숲을 걷다가 낯선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수준의 재미있는 일.


나라는 정확히 두동강이 났고, 매일 똑같은 뉴스와 영상들은 이제 신물이 날 지경이다. 날이 갈수록 자극적이고 폭력적이 되어간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살해된 초등학생을 비롯해 부산 신축 아파트 화재 사고 등 사회 곳간에서 인명 피해가 일어난 들, 유튜버들의 음모론이 모든 비극을 뒤덮어 버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들에게 슈퍼챗(현금)을 난사하며 환호를 한다.


그런거다. "너 똥 먹어봐, 그럼 내가 10만원 줄게." "너 옷 벗고 가슴골이나 허벅지살 드러내고 춤춰봐, 그럼 내가 100만원 줄게." 유튜버의 자본 순환은 이런 식의 천한 수요와 공급이 맞물려 돌아간다.

대한민국 1타 강사로 유명세를 떨치던 전한길 씨도 마찬가지다. "너 극우 집회에 가서 개소리(Bull shit) 해봐, 그럼 너 지금의 연봉 몇배는 번다니까" 그렇게 그는 전광훈의 계보를 잇는 극우 특급전사로 거듭나버렸다. 다음 총선 때 대구·경북 지역 국회의원 한 자리 즈음은 따놓은 당상으로 보인다. 극우 특급전사에 대한 예우는 해줘야 되니 말이다.


최소한의 양심이며 상식이 사라진 시대다. 대통령은 사법최고 기관인 헌법재판소 변론기일에 나와 연일 해괴한 소리를 내놓는다. 의원이랬다가, 요원이랬다가, 이제는 인원이라고 한다. 과거 '바이든'이 '날리면'에서 멈췄던게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이제는 사법기관이 조롱거리가 됐고, 야인시대가 도래한 듯 법 보다는 주먹이 앞선다. 처벌 조항이 물렁하니 죄를 짓고 잠시 징역살이를 하더라도 유튜브로 얻는 수익과 유명세가 더 이득이라는 계산이 깔려있기도 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해방 이후 이렇게까지 나라가 두동강 난 적이 있었던가. 하물며 2030 청년들이 극우가 된 배경은 어디에 있는걸까. 그들은 보수, 혹은 우익이라는 뿌리와 가치는 어디에 근원하고 있는지 이해는 하고 저런 식으로 날뛰는 걸까.


대한민국 집회에서 미국 성조기는 왜 들고 설쳐대나? 미국의 51번째 주(州)로 우리나라가 편입되어야 하며, 우리나라는 미국의 속국이라고 떠들던 당신들 극우 선배의 메세지 때문인가. 그제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하고 중국대사관으로 처들어간 한 극우 젊은이를 보며, 나는 마블 영화의 유명한 대사가 떠올랐다. "We have hulk.(우리에겐 헐크가 있다.)" 차용하자면, 우리에겐 민주시민이 있다는 얘기다.


나라가 두동강 나며 평소 존경해 마다않던 교수님들과 사회 선배들까지 모두를 거를 수가 있게 됐다. 정화 작용이 된 셈이다. 그들도 자기들에 반하는 논리를 펴는 나를 거를 수 있길 바란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예를 갖추기도 민망하다.


이번 계엄 사태를 바라보는 그들의 논리는 항상 같은 패턴으로 시작이 된다. "계엄은 잘못됐다. 하지만-" 이른바 '하지만'의 역설이다. “살인은 잘못됐다. 하지만-” 하며 변론을 하는 것과도 결이 다르지 않다.


학교에서 한 아이가 아무 잘못도 없는 친구를 흡씬 두들겨패고 왔는데, 해당 아이의 부모는 그런다. “우리 아이가 때린 건 잘못했죠. 하지만-”


뭐 어쩌자는 말인가. 앞문맥을 통째로 부정하는 '하지만' 이라는 접두사가 매번 왜 나오나. "그건 잘못됐습니다. 그래서 죄송합니다." 하는 연결어가 맞지 않나?


나는 그렇게 배웠는데. 헌데 탐욕과 노욕에 찌든 위정자들은 학창시절에 대체 뭘 학습한건지 알 길이 없다. 그때에도 성조기를 흔들며 데모하느라 배움의 시간이 부족했을지도.


이 난국에서 재미난 일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찾기가 어려울 것 같다. 삼나무 아래에서 지난 여름의 일을 생각하며 사과를 한 입 베어문다. 다시 만날 낯선 여인을 그리며. 시퍼렇게 질린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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