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안동의 저력을 믿습니다.

by 임기헌

밤12시가 넘어가자 제법 비 다운 비가 내리는 듯 합니다. 유례없는 산불로 이게 다 뭔가 싶습니다. 제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안동의 많은 곳이 화마에 휩쓸려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천년의 시간을 지탱해온 문화재와 사찰, 공공시설을 비롯한 주거지역 다수를 이번 산불로 잃게 됐습니다.


오늘 친구 하나가 그러더군요. 너는 인스타나 페이스북 활동을 그렇게나 하더니 왜 불나고 난 뒤엔 한마디가 없냐면서 말이죠. 이에 저는 따져 물었더랬죠. 내가 무슨 말을 할까. 감성팔이라도 할까. 국민 여러분, 힘을 모아주세요!! 하면서? 내가 방탄소년단 급의 인지도가 있나? 뭔 X발 개소리야 짜증나게.


산불이 엄습한 이후에 쓰고 있던 책과 내달 아프리카 쪽을 둘러보려 했던 일정 모두를 취소 했습니다. 동시에 수일째 대한민국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안동 산불‘ 관련한 소식 모두를 탐닉 했습니다. 가관이더군요.


“윤통 지지하는 꼴통 동네 참 꼬시다.ㅋㅋㅋㅋㅋㅋ”

”26명 사망했으니 탄핵 기각을 바라는 사람 26명은 줄었네ㅎㅎㅎㅎㅎ“


뭐 대충 이런 식의 댓글들이 주를 이루고 있더군요.


할 말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오늘 저한테 왜 말이 없냐고 채근한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요즘 우리나라가 진보, 보수로 두동강이 났다고 바라보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미친 사람들, 그리고 미쳐가는 사람들, 이 두 부류로 나눠졌다고 보는게 보다 명징할 겁니다. 저도 기실 그 중 하나겠지요.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을 가지려 애썼지만, 그 애쓴 순간조차 공염불이였음을 잘 알게 됐습니다.


누군가는 싫은 사람과도 함께 공존해야 한다고 외칩니다. 글쎄요. 그러던지요. 다만 저는 싫습니다. 더이상은 못하겠습니다. 정말 사람이라는 인격체에 치가 떨립니다.


산불을 끄려 해저드에 고인 물을 퍼가는 헬기를 향해 티샷을 날리는 여성분을 보며, 옆동네에 산불이 났는데 버젓이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을 보며, 국토의 반이 타들어 가든 말든 아침 저녁으로 가슴골과 허벅지살을 교묘히 드러낸 채 셀카를 찍고, 동시에 근사한 음식 사진을 하루에도 몇차례나 연거푸 올리는 무수한 사람들을 보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퇴근 후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행복일텐데요. 안동의 많은 시민분들이 평생 일궈온 그 터전을 잃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보수 지역이라서. 더없는 피해를 입고 종국엔 흔적도 없이 소사(燒死) 됐어야 속이 후련하실텐데, 살아있어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내가 사람이가, 내는 소만도 못한 백정 아이가”


맞습니다. 저는 소만도 못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밤은 많은 비가 쏟아져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내 고향 안동의 저력을 믿습니다.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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