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안간 공부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마치 기말고사를 앞둔 학생처럼. 원소 기호를 되뇌이고, 고차 방정식의 공식을 외우는거다. 조선시대 왕들의 업적을 들춰보고, 영어의 아리송한 숙어들도 밤새 외워 보는거다.
혹자는 그런다. 당신의 열정이 문제지 지금이라도 하라고. 음,, 뭐 그럴지도.
그런데 내 처지에 가당키나 할까. 현실은 무시하고 열정만 앞세워 밀어붙히면 되는 계제일까. 밥벌이는 어쩌고, 매달 들어가는 고정지출은 어떻게 할거며, 노후는 무엇으로 담보할 수 있을까. 엄마의 은퇴 후 삶과 고학년이 되어가는 조카들을 키워내느라 버거워하는 누나네는 또 어쩌고.
이 글을 엄마가 보지 않길 바라며 동시에 내 상상의 나래를 펴보자면, 집이 엄청 부자였으면 어땠을까 하는거다. 그럼 나는 박사과정을 밟으며 수년간 계속 수학을 이어갔을거다. 꼭 교수나 연구원이 되려는 건 아니다. 좋아하는 학문을 박사과정까지 마스터 한다면 속이 후련할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태국의 한적한 사원으로 건너가 비욘 나티코 작가처럼 ‘내가 틀릴 수도 있다’라는 자성과 함께 성찰의 시간도 갖고싶다. 그런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태양계 행성들을 관측하고 고증하며 여생을 보내는거다.
1차적인 상상의 나래는 여기까지다. 이 상상을 현실에 가져온다면 하다못해 5억 이상의 큰돈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냥 내 만족을 위해 이 돈을 쏟아붓는거다.
가능할까. 스스로 생각해도 개소리(bullshit) 같은데?
일찍 일어나는 새가 높이나는 법이며,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가당치도 않은 언어도단으로 희망의 씨를 뿌려대면 그 씨앗은 뿌리를 내리고 알아서 자생할 수 있을까. 현실은 상상을 어디까지 웅변해 줄 수 있을까.
늦은 시간까지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나서며 든 푸념이다. 책을 한아름 들고 함께 도서관을 나서는 학생들과 잠시 머리를 식히러 자판기 커피를 뽑아먹는 또다른 학생들 틈에서 나도 오늘은 기말고사를 앞둔 학생이 된거다. 아무 걱정없이 공부만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 속을 살고 있는 학생들을 뒤로하며,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돈벌이에만 몰두할 수 밖에 없는 내 처지가 참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그림이 봄날의 밝은 즐거움을 담고 있었으면 한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의 바램이다.
내일의 내 모습도 가게 손님들에게는 봄날의 밝은 즐거움이 투영되어 보였으면 좋겠다. 내가 오늘 같은 푸념을 늘여놓은지 전혀 모르게 말이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으로 쉬다 가자. 그것만이 내 세상이란 생각이 든다. 공부는 개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