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바다를 동경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by 임기헌

나도 일찍이 아이를 낳았다면 지금쯤 고등학생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참 예뻤을테고. 퇴근 후 아이가 있는 도서관에 들려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며 입시 때까지 지치지 않도록 발맞춰 나가는 상상도 해본다. 이제는 이룰 수 없는 꿈이라 슬프지만, 엉뚱한 상상은 또다른 삶의 활로가 되어주기도 한다.


요즘 선배들이나 친구네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이야기 주제는 아이들 진로 문제로 모아진다. 곧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어서다. 그러다보면 보잘 것 없는 나의 경험칙을 묻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고민이 된다.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는게 맞는지, 아니라면 현실을 일찍이 자각하고 아이의 진로를 틀게 하는게 맞는지에 관한 고민이다.


그럼 오늘은 슬프지만 한번 솔직해져 볼까.(공직이나 사업은 제외하고 대기업 입사에 관해서만 얘기해볼게요.) 우리가 살고있는 이곳 안동에서 대기업을 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를 먼저 해주고 싶다. 안동 전체에서 1등을 찍고 서울대를 간다한들 가능할까? 이력서는 통과가 될거다. 그 다음 입사시험, 이 후 1차-2차-최종으로 이어지는 면접은 그럼 어쩔텐가. 대학에서 실력을 쌓는다고 가능할까. 서울의 친구들은 네가 대학에서 쌓기 시작한 내공이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초등학교 때부터 쌓기 시작하는 걸. 그렇다고 영어가 현지인만큼 유창한가? 중국어나 일본어는?


‘영국이 4개의 국가로 나눠진 역사적 배경과 유럽연합에서 탈퇴한 이후의 경제상황과 파운드의 세계기축통화로써의 가능성에 대해 기술하시오.’


대기업에 입사하고픈 당신들은 최하의 난이도라 할 수 있는 위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할건가?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하나 있다. 어쨌거나 낙하산이 됐건, 운이 됐건, 입사만 하면 버틸 수 있을거라고.


꿈 깨시라. 요즘은 대부분의 대기업이 글로벌화 되어 있어서 일단 영어가 안되면 업무가 안된다. 저 멀리 미국의 한 거래처와 간단한 미팅 일정 정도는 영어 대화로 ‘어레인지’ 할 수 있겠지? 응?? 어레인지는 뭐지..? 이러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회의 때마다 가감없이 자기 생각을 피력하고 전략을 수립한 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될텐데 그때는 어떡할거며, 수시로 작성해야되는 보고서는 또 어쩔텐가. 하루의 일기를 쓰는 일도 버거울텐데, 10페이지 혹은 30페이지가 넘어가는 글이 써질까.


더할까, 이즈음에서 그만해야될까. 나도 마음씨 좋은 어른들처럼 아무 근거도 없이 “다 잘될 거야” 하면 좋은 사람이 되는걸까 싶다.


이토록 힘들다. 더군다나 인간을 변방으로 밀어내고 있는 ‘AI’시대라니. 계속 진화하고 있는 그것을 보고있자면 정녕 포기가 빠를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 왕자>의 작가 생텍쥐 페리는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을 모아 목재를 수집하고, 일을 분배하고, 명령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광활하고 끝없는 바다를 동경하도록 만들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고민이 많은 형님, 형수, 친구들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다. 아이들과 서울에 자주 가보시라고. 휴일 말고 평일날 광화문이나 여의도에 가서 그들의 점심시간을 훔쳐보시라고. 어떤 옷차림인지, 어떤 화법과 손짓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바삐 움직이는 그곳의 분위기는 어떤지. 애나 어른이나 온종일 폰만 들여다보고 있지 말고 답을 찾을 수 없을 땐 움직이면서 직접 느껴보라는 얘기다.


“형수, 아이들에게 공부만 하라고 다그치지 마시고 그들을 동경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전부다. 덧붙히자면 나는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게 아니고 ‘자유’를 동경해서 퇴사를 했고 이혼을 했을 뿐이다.


비 갠 뒤의 밤날씨가 차다. 한달 가량 남은 수능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들의 자유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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