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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Oct 18. 2022

트랙 위에서

정확히  자리였다. 유년시절 학교 대표로 전국 달리기 예선 대회에 나와서 뛰었던 . 개천에서 뛰놀던 개구리가 처음으로 전국구 친구들과 자웅을 겨뤄보던 날이였다.


결과는 뒤에서 두번째. 예선 탈락이였다. 차이도 상당했다. 당시 옆에 서있던 친구들은 마치 짐승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학교 대표로 전국 수학 경시대회에 나갔더랬다. 나는 자신만만 했다. 학교에서 풀어본 문제는 모르는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또 예선 6등으로 탈락.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응용할 수가 없던 문제들을 대도시에서 온 친구들은 술술 풀어내고 있었다.


처음이였다. 자괴감이 든 건. 어린 나이에 이 시골 바닥이 얼마나 싫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고등학교 땐 친구들과 가출을 해 몇일간 서울살이를 해본 적도 있었다. 시골 아이들은 그랬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였다.


가출한지 보름만에 확인한 ‘삐삐’ 음성 사서함엔 엄마의 수없는 메세지가 있었다. “기헌아, 엄마 너 없으면 못산다. 제발 집에 들어와라” 같은 내용이 전부였다. 그래도 난 돌아가지 않았다.


이후 마지막 음성 메세지를 하나 더 듣게 됐다. “기헌아, 우리 이제 이사간다. 너 알아서 잘 살아라.”하며. 나는 어린 마음에 두려움이 앞서 바로 전화를 걸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고, 돌아가서 아버지께 몽둥이로 먼지나게 맞은 기억이 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나는 학교와 취업 등에 성공해 서울로 거처를 옮기게 됐고, 또다시 엘리트 집단에서 경쟁을 펼치게 됐다. 싫었다. 7~8년차가 되자 인내는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고, 번민은 번뇌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과 경쟁해 이길 마음도 없었다. 동기부여가 사라지니 회사 생활을 계속 할 이유도 없었다. 이쯤하면 됐다는 판단이 들었다. 촌놈의 서울 살이는.


그렇게 경쟁의 삶은 끝이 났고, 나는 시골에서 오늘 또 하루를 살아내며 지평선 어딘가에 서있다.


지평선 너머를 비스듬히 바라보며 생각을 해본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운동장 관객석 어디선가 우리 엄마 아빠가 다시한번 “우리 아들 화이팅!!”하며 외쳐 준다면 나는 다시한번 신명나게 달릴 수 있을것만 같은 생각.


이제는 누굴 이기려 하지도 않을 작정이다. 혼자, 혼자 그렇게 뛰어가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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