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아 멈추어다오

by 임기헌

요즘 <나는솔로>와 <이혼숙려캠프>를 즐겨본다. 가게 운영시간에는 다른 뭔가에 집중하기가 힘들어 그 두 개의 프로그램을 켜놓고 킬링타임용으로 즐겨보는 편이다.


<나는솔로>를 보고 있자면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는 연애세포가 발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학창시절 너무도 마음에 드는 여자 후배가 있었는데, 과연 걔도 나를 마음에 들어할까 싶어 수개월을 끌다가 고백을 했더랬다. 그런데 결국 남자친구가 있다는 대답을 듣고서는 얼마나 허망했는지.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그날 밤 친구들과 술을 진탕 들이붓고, 삐삐의 음성메세지로 '그동안 너 좋아했었어' 하는 마지막 음성을 남기며 찌질의 끝을 보이기도 했었던 것 같다. 반대로 이 얼마나 낭만적이었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연애는 이토록 찌질해야 제맛인 것이다. 일종의 고백 과정에서는 용인이 되는 법이다. 이 후에 사회에 나와서도 고백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무척이나 다양한 여성들과 연애를 할 수 있었다. 내 주제에 맞지않는 운빨과도 같은 로맨스가 아닐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도 내가 인지하지 못한 큰 상처를 안긴 누군가가 있다면, 지금의 내 꼬라지를 보며 위안을 삼았으면 좋겠다. 벌을 달게 받고 있으니 말이다.


<이혼숙려캠프>를 보면서는 '나는 정말 양반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게 된다. 메인MC인 서장훈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 안에는 분명 또다른 나라가 존재한다"라는 것이다. 즉슨 워낙 해괴한 부부들이 출몰을 하니 이해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빌런 옆에 또 빌런, 그 옆에는 대마왕, 그 뒤에는 끝판대장들이 하루가 다르게 우르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어제 회차에서는 나는 또 한명의 역대급 빌런을 보게 됐다. 처음엔 남편 영상을 보며 두번이나 바람을 폈길래, '완전 미친놈이구나' 하고 생각을 했더랬다. 이어지는 아내의 영상. 웬걸, 맞바람이다. SNS를 통해 연락오는 남자들도 여과없이 만난다. 상간남과 동거하는 와중에는 또다른 남자와 바람을 펴서 그 상간남과는 헤어졌다고 한다. 응?? 더욱 가관인 건 말이 통하질 않는다는 것. 서장훈과 패널들, 심지어 제작진까지도 멘붕에 빠진다. 본인이 바람핀 건 정당하고, 상대가 바람을 피면 고소를 해버린다. 아이에겐 쌍욕을 일삼고, 그 모든 탓도 아이에게 전가시킨다. 참... 토론을 좋아하는 나도 이런 여자 앞에서는 한 마디도 하기 싫을 것만 같다. 때로는 매가 약이듯, 쥐어박고 싶은 마음만 들 것 같다.


희한한 사회다.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부부들이 우리 사회 모두를 대변하지는 않겠지만, 단면을 보여준다는 생각은 하게 된다. 바람피는 건 여사다. 배우자의 베스트 프렌드 뿐만이 아니라 직장 동료, 아르바이트생, 교수, 과외선생 등등 이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든 바람을 핀다. 더 깊은 얘기는 계정 정지를 먹을까 싶어 이곳에 못하겠지만, 과거 서울에서 친하게 지내던 변호사 선배와 술을 한잔 하면서 관련된 얘기를 하다보면 현실은 더욱 잔혹해진다.


왜 그럴까. 그럼 나라고 윤리적으로 떳떳할까. 아니다. 매혹적인 이성 앞에서, 그것도 술이 한잔 들어간 상태에서 부처가 아닌 이상 그 누가 스스로를 컨트롤 할 수 있을까. 다만 누군가를 사귀고 있는 상태에서는 컨트롤이 가능했다. 바람을 핀 적은 없다는 얘기다. 헤어지고 만나면 되지, 굳이 상대 엿먹이려는 바람을 뭐하러 펴? 라는 괴이하면서도 간결한 생각을 나는 가지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일부일처, 일부다처, 혼합형이 뒤섞여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적 욕구는 다양하게 발현될 수 있고, 배우자의 친구든, 회사 상사든, 길거리에서 처음 본 이성이든, 가리질 않는다는 게 중론으로 인식되고 있다. 단순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말이다.


그런데 인간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그 틀에 스스로를 끼워넣게 됐다. 제도와 욕구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는 거다. 그렇다면 굳이 결혼을 왜할까, 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품게 된다. 정서적 동반자 마련, 공동체 형성, 양육의 안정성 따위를 통한 사회적 질서를 위함일까?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종족 번식은 결혼의 목적이 아니다. 일부다처제였던 과거 왕족이나 세렝게티 초원의 맹수들도 결혼 없이 종족 번식을 하니 말이다.


복잡하다. 결혼을 해도 또다른 이성을 보면 눈이 돌아가는게 어찌보면 당연한데, 그러면 안될뿐더러 법적 처벌까지 받아야 된다니. 인류의 난제가 아닐 수 없다.


바람피는 이들이 정말 지나치게 많은 현대 사회다. 굳이 뉴스나 <이혼숙려캠프> 같은 프로그램을 보지 않아도 장담할 수 있는 건, 우리 생활 속에서 훤히 들여다 보이기 때문이다. 나 뿐만 아니라 어딘가에서 지금도 본인만 모를 뿐이지 지인들끼리 얼마나 많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겠나. 세상에 비밀은 없다. 베갯머리 송사도 결국은 세상에 다 퍼져나간다. 나한테 오빠, 오빠 거리며 친근하게 구는 동생들이나 친분이 있는 누나도 지금 가정을 두고 바람을 피고 있다는 걸 나는 다 알고 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본인만 모르는거다.


과거에는 어쩌다 주위에 한 명 정도 바람났다는 얘기가, 이제는 한 집 건너 한 집으로 겉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분위기다. 과감하기까지 하다. 방귀 낀 놈이 성 낸다고, 바람의 당사자인 그들은 "걸리면 헤어지면 될거아냐!!" 하고 되려 윽박지르기도 한다. 상대가 날 더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겠지. 그럼에 그들은 오늘도 너무도 은밀하고, 너무도 태연하게 행동을 한다.


글쎄다. 이쯤되니 이 모든 게 사람들만의 탓인가 싶기도 하다. 시대가 지나치게 빠르게 흘러간다. 분명 풍요로워졌는데, 그 뒷면에는 우리가 지키던 소중한 가치가 무너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세상 모든게 모순이라지만, 지아비, 제아내를 배신하고 가정을 으깨는 일은 너무도 참담하다.


이혼을 직접 경험한 후 그 누구에게도 이혼 만큼은 쉽게 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바람아, 부디 멈추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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