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받은 고급양주로 혼술을 하자니 영 어색하다. 폰의 연락처 목록은 말끔히 지워버린지 오래고. 남아있다한들 딱히 연락할 곳도 없긴하다. 어제 미국에서 걸려온 선배의 전화는 얼마나 반갑던지. 모순이다.
겨울이 되니 혼자사는 집은 더욱더 휑해진다. 사람의 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상에 숟가락 하나 버젓이 들고 저녁밥을 찾아 헤매는 팔푼이가 된 기분이다.
무슨 재미일까. 질문이 잘못됐나? 그럼 무슨 재미있는 일 없을까. 지구가 시속 10만km의 속도로 태양 주위를 정확히 한바퀴 도는 1년의 시간 동안, 이 둥근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별한 어떤 일.
유년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따분했을텐데, 나는 도대체 어떻게 버텨낸걸까. 많은 꿈이 있어서 참고 인내할 수 있었던걸까. 아닐텐데. 뭘까. 여름을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서일까.
살아오며 보지못한 그것, 다시 거슬러 삶을 복기하다보면 그제야 보이는 그것은 뭘까.
유난히 한가로운 오후에, 문득 눈가가 촉촉해지는 저녁 퇴근 무렵에, 나는 알 수 없는 삶섶의 그 향기가 그리웠나보다. 여우가 시집가던 날 구름이 흘린 눈물 같은, 슬프고 멋쩍은, 뭐 그런 것이다. 이름하여 여우비.
세밑에 다다른 지금, 사람들은 한 해 동안 누군가로부터 “네가 너무 보고싶어”라는 표현을 얼마나 들어봤을까. 사랑과 그리움, 당신에 대한 절실함이 모두 함축된 이 문구. 1년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얻게되는 이 문장 하나.
돌아오는 계절마다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보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건 또 어떤 의미일까.
마음은 여름 햇살이고 싶어라. 나에겐 아직 시대를 건너오지 않은 여름이 남아 있으니까. 그런데 말이다, 이젠 여름의 모든 일이 아득히 먼 곳처럼 느껴진다.
나의 마음은 이제 어느 계절에 두나.
노곤하다. 잉여스러운 내 삶의 종말도 이 겨울처럼 ‘짠’하고 소리소문 없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당장 내일이여도 좋다. 정말 좋을 것만 같다. 44개의 여름이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