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머리를 자르러 가는 헤어샵의 동생이 머리까지 다 감고 나서야 무심코 툭 던진다. "오빠, 요즘 또 힘들어?"하고. 머리칼에 힘도 많이 약해진 것 같고, 얼굴 표정도 어둡다나 뭐라나.
"나야뭐 맨날 똑같지, 언제는 좋은 날이 있었나뭐. 연말에 소주나 한잔 하자. 연락줘. 간다~"하고 나는 짧은 대답을 건네며 샵을 나섰다. 것도 무뚝뚝한 말투로.
얼마간 지났을까. 차 안에서 신호 대기 중 '부웅'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끼어든 차량으로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화딱지가 나서 경적을 몇번이고 울려댔다. 앞차는 그제서야 미안하다는 의미의 쌍깜빡이를 켠다.
차창 밖으로는 사람들이 두꺼운 옷을 겹겹이 챙겨입고 움직인다. 오늘 이곳 날씨는 맑음. 도쿄도 맑을까? 따사로운 햇살도 비추고 있고, 다만 온도는 영하를 가르키고 있다. 연인들도 보이고, 직장인, 그리고 제 몸짓보다 큰 가방을 들쳐멘 학생들도 보인다.
차 안의 룸미러를 통해 잠시잠깐 내 모습을 들여다봤다. 차 안이 어둡나? 아니다, 그늘지고 일그러져 있는데, 뭐지? '요즘 힘들어?'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떠올랐다.
나 힘든건가? 아닌데, 힘들게 뭐가 있나. 계절 탓인가 싶기도 하고. 보고싶은 사람도, 그리운 사람도 하나 없고.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이 기다리고 있는 가정이 있지도 않고. 꿈도 없고, 열정을 끄집어내어 하고 싶은 일도 없는 걸.
늦가을부터는 책도 한 권을 완독하지 못했다. 쓰고 있는 책 원고도 대부분의 작가들이 이젠 AI를 활용한다는 소식에 손을 놓은지 오래다. 내 힘의 원천이었던 상상력과 창의력이 AI로 대체된다는 걸 깨달은 순간, 활자의 수명은 다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유일하게 좋아하는 운동인 축구 클럽과 산악회도 탈퇴를 했고, 사람이 싫어져 동창회도 뛰쳐나왔다.
이 결과 때문일까. 아닐거다.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은 강하게 들지만, 나는 제법 훈련이 되어 있어서 이 따위에 힘들다는 곡소리를 내거나 주눅들어 있지는 않는다.
나도 외제차를 타고 여전히 백돌이지만 골프를 친다. 서른평대 아파트에 혼자 살며 유능한 사회 선배들을 만나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양주를 마시기도 한다. 한가한 날 비행기를 타고 먼나라들을 유랑하기도 하고, 내키지는 않지만 특별한 누군가에겐 명품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나와는 참으로 모순적인 이 광경들을 나는 역설적이게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럼 나도 이참에 과시나 해볼까. 지금처럼 누추한 사진이나 글 따위 말고, 세련된 하루들을 사진으로 찍어 허구헌날 '좋아요', '댓글' 등의 부가가치를 구걸 하는거다. 이제는 해당 게시물의 조회수까지 확인할 수 있으니 그 조차도 과시용 소재가 되던데, 나도 그런 식의 삶이면 "힘들어?"라는 형해화된 물음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까. 그들처럼 자제와 절제, 관용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거다. 내 외모, 내 가슴골, 미니스커트 속의 내 허벅지가 이렇게나 매력적이야!! 하며 관능적인 사진 한장을 툭 던져놓으면 나같은 뭇 남정네들이 벌떼처럼 몰려와 관심을 주는 걸. 부가가치로 유명인사가 되어 SNS특수를 꿰할 수 있는 셈이다.
'AI'와 'SNS'로 오염된 시대에 맞춰가려 애쓰고는 있지만, 때로는 염증이 난다. 이별에도 매너가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다. 연락처 차단과 보란듯 행해지는 환승 연애로 상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려 든다. 서로의 일상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SNS의 병폐다. 상대를 안달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무기가 우리 손안에 있는 것이다.
과거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 예를 다했지만, 요즘은 일부 맘충들의 끝없는 해악으로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교단을 떠나려 고민을 하고 있다. 손안에 든 최고의 무기로 선생들을 감시하고 훈육하며 갈군다. 한끼의 급식 메뉴에 칼로리가 조금 부족하다고 영양사 선생님을 쥐잡듯이 잡기도 한다.
다 괜찮다. 계엄으로 계몽이 됐다며 찬양하는 사회에서 살인, 폭행, 강도 짓이 뭐 어떠랴. 선생을 줘패거나 제 배우자가 바람피는 정도는 애교로 봐주자. 이제는 다 괜찮다. 무슨 짓을 해도 사회의 절반은 그들 편이니까.
곰곰히 생각해보건데, 내가 정녕 힘들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들을 앞으로도 계속 지켜봐야 된다는 게 아닐까 싶다. 과거로 돌아갈 수도, 미래에는 나아질 것 같지도 않은 확신이 들어서일게다.
AI에게 시계침이 있는 아날로그 시계 사진을 보여준 뒤 몇시냐고 물어보면, 프로그래밍 능력을 총 동원해 시곗바늘 사이의 각도를 재 가며 현란한 기교를 부리지만 결국 틀린 시간을 알려준다.
그럼 나는 이런 식으로 AI가 실수하거나, 그들이 닿지못한 사각지대를 바라보며 기다려야 될까.
시인 네루다는 말한다. '시인이 되려면 바닷가를 거닐며 파도의 소리를 들으면 된다'라고. 나는 시인이 되고픈 걸까. 태양계 행성들과 사색하며 걸을 수 있는 바다 곁이 이토록 좋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