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참 좋아라했다. 오를 땐 분명히 힘든데, 어떤 매력에서인지 한평생 계속 찾게 된다. 20~30대에 그 빈도수는 정점을 찍기도 했다. 서울에 거주하던 당시에는 특별한 일이 없는한 주말에는 무조건 산으로 향했으니 말이다. 때로는 평일에도 새벽4시 즈음 일어나 등산을 한 뒤 출근을 한 적도 있었다.
북한산, 도봉산, 청계산, 수락산, 관악산, 인왕산, 아차산, 불암산, 용마산 등등. 좁은 국토에, 것도 빌딩숲이 밀집해 있는 서울 한복판에 이토록 아름다운 산들이 위치해 있다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다.
북한산 최고봉인 백운대는 그 중 백미라 할 수 있다. 산 정상에 다다를 무렵 암벽을 기어 오르듯이 타고 올라야 마주할 수 있는 그 마지막 쾌감이란. 공포와 환희가 뒤섞인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 공부를 할 때나 여행 목적으로 또다른 나라를 방문 했을 때에도 나는 유명산들을 찾았다. 유럽의 알프스, 북미 대륙의 로키, 지구의 중심이라 일컫는 호주의 울룰루(바위산), 동남아의 이름모를 산들이 그곳이다. 같은 지구에서의 화산 활동과 지각 변동으로 생겨난 산임에도 불구하고 그 산들은 한국과는 전혀다른 모습을 선보인다. 만년설로 뒤덮인 웅장함과 그들이 지구의 탄생과 함께 침묵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질서는 사진으로 담을 수 없을만큼 신비롭다.
다시 한국. 수도권을 벗어나도 자애로운 산들의 향연은 계속 된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안동 지역에도 주왕산과 청량산이라는 울창한 산들이 있다. 주왕산에는 특히나 조선 시대 농업용수로 조성된 '주산지'라는 이름의 저수지가 있는데, 울창한 수림과 능수버들, 왕버들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제 바다 건너 우리나라 최고 높이의 산인 한라산을 들여다 볼 차례다. 세계 어느 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그야말로 한반도의 보물과도 같은 산이 아닐 수 없다. 처음 올랐던 기억은 30대 초반이었지 싶다. 회사 생활을 하던 중, 주말에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한라산을 오른 뒤 저녁 비행기를 타고 당일날 바로 서울로 돌아온 경우였다. 빠르게 올라갔는데도 한 5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정상에서 바라본 백록담. 민족의 정기라도 받은 걸까. 괜한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 못가본 산이 있다면 덕유산 정도가 아닐까 싶다. 간과했던 설악산, 속리산, 치악산, 소백산의 절경은 이루 말해 뭐할까.
내년 즈음이 될까. 산티아고 순례길을 계획하고 있다. 한달 정도 부지런히 걸으면 완주할 수 있다고 하니, 더 늦기전에 다녀올 생각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마음 속 작은 멍 하나 때문에 항상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만큼 심란하고 괴로웠기 때문이다. 산은 그 구심점이 되었고, 글은 활로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몸을 움직여야 했고, 머릿속은 한시도 쉬게하지 않았다. 세상에 없는 무언가를 창의하고 계측하고 추론을 해야했다.
감정의 최고봉인 연인과 사랑을 나눈다고 나아질 계제가 아니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명문으로 내 마음을 대변할 수 있을까.
움직여야 한다. 50년의 항해 끝에 이제서야 태양계 끝을 향하고 있는 탐사선 보이저호의 꺼지지 않는 엔진처럼.
어제 만난 동생이 "오빠는 이상형이 어떻게 돼?" 하고 물었더랬다. "이제와서 이상형은 무슨, 그냥 여자면 다 좋지뭐. 하하~" 하고 나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런데 오늘 생각이 바꼈다. 조금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계속 움직이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