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지도 않은데 송글송글 맺힌 식은 땀, 그리고 빨리빨리 매듭을 지으려는 조바심, 유난히 고된 하루였다. 밀려드는 음식 주문에 왠지모를 짜증과 한숨이 반복되는 날이기도 했다. 마감이 얼마남지 않은 책 원고에 대한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가고, 뼈가 으스러진 발목은 한달째 나을 낌새가 보이질 않는다.
밤 12시. 달 표면 고요의 바다처럼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재래시장의 한 가운데. 어느덧 장막이 닫히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빛을 다하며 무대는 어둠속으로 스며든다. 하루의 끝에서 모든 간판 불을 내리고, 나는 내 가게라는 무대를 뒤로한 채 장막뒤로 사라진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했다. 함께 있을 때는 미쳐 몰랐던 생각. 뒷모습이 참 예뻤다는 걸, 가는 널 바라보며 그제서야 알게 된 그 뒷모습. 불꺼진 내 가게의 뒷모습도 오늘은 참 낯설게 느껴진다. 마치 늙고 병들어 생명력을 다해가는 것만 같은 진한 어둠이다.
'사라져버리는 것을 사랑하는 일은 얼마나 잔인하고 덧없는지. 사랑하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인지, 사라지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인지.'
그제 서울의 한 선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전해 들었다. 올해만 벌써 2번째 전해듣는 부고 소식이다. 불과 5년전만 해도 누군가의 죽음은 온 세상의 슬픔처럼 감정 이입이 됐지만, 지금은 소란하며 자연스런 일상의 하나즈음으로 취급되어 버린 기분이 든다.
그렇게도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이 나의 곁에도 불과 몇 센티미터만을 남겨두고 다가오고 있음을 잘 알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사이로 반복되는 해질녘 노을과 동틀녘 노을의 간극은 몇 센티미터 밖에 되지않는 삶과 죽음 사이의 그 무엇과도 같음을 느낄수도 있다.
내 생명이 다하는 날, 나는 그토록 좋아하는 짜장면을 마지막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누군가 커튼콜을 외치며 나의 마지막 무대를 바란다면, 나는 내 살아온 세상에 어떤 말을 남기면 좋을까.
아마도 미련이 남는듯한 앵콜이나 흔적을 남기려는 유서 따위는 없을거다. 나는 그렇게 장막뒤로 조용히 사라지며 붉은 노을 너머를 훨훨 날아가는거다. 가서, 천상병 시인의 말대로 이 세상 조금은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는거다. 그러니 어떠한 그림자도 남기지 않고 그렇게 고요히 떠나는거다.
‘죽은 사람들 틈에서는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길, 더불어 세상 살며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 만개하는 기분을 그 틈에서는 만끽하길. 필연 그들이 사는 세상은 조금더 계몽된 사회이길, 그리고 꽃향기도 가득하길.’
또각또각. 초속 5센티미터의 속도로 나는 오늘 하루의 끝을 향해 걸어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