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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May 28. 2023

“그게 가능해?”

우리는 보통 교육의 최종 목적지를 '취업'에 두고 있다. 의사, 변호사가 됐건 대기업사원, 공무원이 되건 그 종착지는 취업으로 귀결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간 경유지인 대학이 중요한데,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그 디딤돌이라 할 수 있는 중고등학교에서 내실을 잘 다져야 한다.


그렇다면 이 과정들을 보통의 사람들 기준으로 한번 볼 필요가 있겠다. 평균 수준의 대학을 졸업하고, 일정 수준의 규모가 있는 기업에 취업한 사람들 기준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초봉은 3,500만원 정도로 가정을 해보자. 그럼 실수령액은 280만원 정도. 어른들과 스승들의 말씀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어렵사리 취업을 했는데, 본게임은 이 연봉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이 돈을 잘 구슬려 서울에 정착해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해야한다. 그럼 당연히 5~6억을 호가하는 저렴한(?) 아파트 한 채를 구해야 되며, 아이를 낳으면 육아비며 교육비며 또 한아름 걱정거리를 안게 된다.


이때부터 나는 궁금증이 생긴다. 이 돈으로 사람다운 서울 생활이 가능한가, 싶은. 그런데 어떤 이면에는 또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나는 가끔 얄궂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곤 하는데, 그 세상은 죄다 평일에 두어번은 필드에 나가서 골프를 치고, 명품 쇼핑을 하며, 한끼에 수십만원대는 아랑곳 하지 않는 듯 음식을 소화하는 사람들이 즐비해보인다.


옷도 화려하다. 치마는 짧을수록 좋고, 브랜드는 고가일 수록 폼이 난다. 차는 BMW 정도는 이제 명함도 못내밀게 되었다. 벤틀리나 G-바겐 정도는 되어야 그들과 급이 얼추 맞아 들어간다.


하루 일과의 시작은 골프다. 사진을 찍으러 가는건지, 골프를 치러 가는건지 알 길은 없지만, 그들은 보통의 사람들은 얼씬도 못하는 필드를 무대삼아 그들만의 리그를 펼친다.


골프를 치고나면 이제 뷰와 고급스런 인테리어가 장착 된 어느 레스토랑으로 이동을 해야된다. 테이블 옆엔 고가의 명품백과 차 키 등을 두고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면 요란스럽게 사진을 찍어댄다. '내 수준은 이정도야' 하는 탄성이 나올만큼 폰카 셔터는 쉴새없이 쏟아진다. 가급적이면 명품 요소들이 사진 한 장면 안에 보일 듯 안보일 듯 모두 담기는게 중요하다.


이제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업로드 할 시간이다. 해시태그는 #나는골린이, #가평CC, #청담동레스토랑 등으로 하면 되겠다. 사진이 업로드 되자마자 수많은 민초들은 '좋아요'를 마구 눌러댄다. 그들의 '시녀'가 된 마냥 누군가는 그들을 동경할테고, 또다른 누군가들은 그들을 시기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다.


이렇게 또 그들의 하루는 갈무리 되어간다. 낼모레즈음 이 생활을 반복해야되는 기대감에 그들은 오늘도 골프채를 쓱삭쓱삭 닦으며 유일한 노동력을 발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묻고 싶다. 이런 삶이 가능하려면 어떻게 살아가면 되는지. 시기나 질투의 개념이 아니다. 나는 앞서 말한것처럼 보통의 삶을 살아온거 같은데, 보통의 삶을 살아서는 아무리 골몰을 해봐도 이런 삶을 살아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다니고 월에 200만원씩 꾸준히 적금을 들며 부지런을 떨어도 어림이 없었다.


‘정말이지 어떻게 그게 가능해?’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나는 오늘도 이런 생각을 해본다. 부모의 은덕? 혹은 돈벼락? 당사자들의 속시원한 대답이 나는 언제나 기다려진다. '자수성가'라는 삼척동자도 믿지않을 궤변은 늘여놓지 말았으면 좋겠다.


부모의 건물을 물려받은, 일차방정식의 함의조차 모르던 내 소꼽친구는 비오는 오늘도 필드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나보다. 그의 아내와 아이들도 덩달아 즐거운 모습을 보니 나도 즐거운 척을 아낌없이 해야겠다.


부잣집 남자에게 시집간 한 여동생은 G-바겐에 기스가 살짝 났다며 인스타그램에 울상을 해놓았다. 나도 같이 슬픈 척을 해줘야겠다.


삶은 이렇게 살아가는건데, 돌아가실때 조차도 빚 밖에 남겨주지 않은 우리 아버지가 오늘 만큼은 참 밉다. 오늘만 미워하고 내일부터는 다시 그리워하며 살거다.


비가 온다. 이쯤에서 내가 인내할 수 있는 스님의 자비도 함께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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