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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un 24. 2023

돼지목에 진주목걸이

어제는 저 멀리 미국에서 전화를 걸어온 친한 누님과 2시간 가까이 통화를 했더랬다. 시간이 정반대이다보니 여기는 밤12시가 지나고 있었고, 누나는 이제 출근해서 티타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누나는 미국의 한 유명 대학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자본주의 색이 또렷한 미국에서는 흔히 말하는 엘리트층에 속해 군더더기 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미국으로 이민 간지는 20년이 넘었고, 현지인을 만나 결혼을 해 지금은 두자녀를 양육하며 근사한 하루들을 일궈내가고 있다.


통화는 이런 식으로 가끔씩 하게 된다. 어쩌다 휴가가 맞아 내가 미국으로 가거나 누나가 한국으로 들어오면 만나기도 한다. 한국어가 서툴러 대화의 태반은 영어로 할 때도 있고, 그런식이다. 언어라는게 계속해서 진일보 하기 때문에 현지에 살고 있는 누나랑 대화하다보면 나도 잘 몰랐던 네이티브 표현들을 습득할 수 있는 장점 또한 있다.


누나는 언제나 내 안부를 여쭤봐주신다. 요즘은 괜찮냐며, 혹시나 아플까봐, 행여나 혼자 외로워 하고 있을까봐, 늘 들여봐주신다. 매사가 낙천적인 누나는 마법같은 대화의 너울로 내가 방향타를 잃지 않도록 조언도 아끼지 않으신다.


10분을 이야기해도 불편한 사람이 있고, 2시간을 떠들어도 10분을 이야기한 마냥 편한 이가 종종 있다. 나도 그렇고, 웬걸 누나도 그렇단다. "그럼 우리 일찍 만났으면 연인이 되었어도 좋았겠네!(Maybe we could be lover for each other!)" 하며 농을 섞기도 한다.


누나 덕에 매번 피부로 접하지 못하는 '초강대국' 미국 문화도 마치 현지에 있는 것처럼 바로미터로 알아 갈 수가 있다. 예컨데, 부모자식간의 애터튜드와 부동산 문제, 미국 사교 문화와 인종, 정치 문제 등이 그러하다. 얼마전 이직을 한 누나의 이직 스토리 또한 내가 알지 못한 그 무언가의 이슈들이 복합되어 있어 또다른 정보들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가끔 강의 때 학생들을 만나거나 후배들을 만나면 가급적 미국을 여행해보거나 탐구해보라고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전세계 1등 국가여서 그런것도 있지만, 우리나라보다 대략 20년은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을 정밀하게 들여다보면 우리의 미래를 반추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에서는 대한민국의 명품 열풍에 관한 칼럼을 적나라하게 다뤘다. 그들이 보니 웃기지도 않는거다. 대학생들 사이에도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가방 하나 없는 이가 드물고, 연애의 목적이 명품을 득하기 위함으으로 둔갑되는 행태도 종종 보인다고 지적을 한다. 대한민국 SNS는 명품과 사치로 얼룩진 대회의 장이 되버린지도 오래라며 비판을 이어갔다.


서열 문화라고 할까. 제 수준을 훨씬 벗어난 명품 치장에 잠식 된 대한민국은 본인의 사회적 수준보단 남들에게 뒤쳐지기 싫은 그 무언가의 욕망이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몇몇 사람들은 샤넬이나 루이비통을 들쳐메고 결혼식이나 모임에 등장하면 그걸로써 서열이 매겨진다고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과거 배우 강소라가 허름한 원피스를 입고 시사회장에 나타난 적이 있다. 대중들은 당연지사 톱스타가 입은 원피스니 명품인 줄 알고 그 서열에 본인도 끼워맞추려 원피스 구매처를 알아보려 난리가 난 사례가 있다.


그런데 이후 강소라는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 원피스는 사실 시장에서 산 2만원짜리 보세라고 밝혔다. 그런 것 같다. 본인이 명품이 되면 2만원짜리 보세를 걸쳐도 명품이 될 터이고, 그 반대 경우라면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헤르메스를 감싸도 돼지목에 진주목걸이를 맨 모양새가 되는 것이다.


누나는 올 연말쯤 한국에 오면 가장 먼저 한강에 가서 자판기 커피를 먹어보고 싶다고 한다. "누나, 요즘은 시대가 바껴서 한강에서 라면 먹는게 유행이야!!" 했더니 "그것도 낭만 있겠다" 하며 긴 대화를 갈무리 지었다.


20년을 앞서가는 초강대국 미국의 낭만과 대한민국의 낭만은 이토록 결이 다른가보다. 틈틈히 진주 목걸이를 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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