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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기헌 Jun 23. 2023

찬란한 타인들

퇴근을 하고 집까지 걸어오다보면 근사한 술집에서 술을 한잔하고 싶을 때가 있다. 상대가 있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혼자 멋쩍게 먹는 모습도 자주 그려보는 요즘이다.


외국에서 생활을 할 때에는 동네 펍에서 누군가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혼자 보지도 않는 책을 펴놓고 종종 그런 문화를 즐겼더랬다. 그러다 낯선 이와 동석을 하기도 하고, 이내 친구가 되기도 한다. 처음보는 타인의 시선과 스킨쉽을 경멸하는 우리나라 문화와는 극명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


가끔 용기내어 마음에 드는 술집으로 들어가 맥주를 한잔 마실까, 하는 고민도 안해본 건 아니다. 그런데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는다. 더군다나 작은 소도시에 살다보니 혹시나 혼자 있는데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쩌지, 하는 난처함도 미리 생각케 된다. 밥은 혼자 잘 먹으러 다니건만, 술집까지는 아직 내공이 더 쌓여야 되는 모양이다.


언젠가 일본 도쿄에 여행을 갔을 때 도쿄타워 근처 어딘가의 선술집에서 혼자 사케를 마신 기억이 있다.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모르던 나는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만 연발을 한 채, 작은 술집 안에서 일본 특유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한 알바생이 자기가 한국어를 할 줄 안다며 말을 걸어왔다. 교포인데, 일본서 대학을 다니며 알바를 하고 있다고. 어찌나 반가웠는지.


혼자의 묘미는 이렇듯 길위에서 발현이 되는 것만 같다. ’지구는 둥그니까 계속 걸어나가면~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고 오겠네~‘ 하는 여느 동요의 노랫말처럼, 낯선 타인의 향기가 그리운건 아닌지 모르겠다.


찬란한 타인들과 술과 벚꽃, 그리고 매미들의 윤창이 그윽했던 도쿄의 밤 운무가 사려깊어진다. 와인에 도쿄 한 스푼 넣은 기분이다. 혼자 마시는 와인은 언제나 달다. LP판에선 브루노 마스의 ‘When I was your man’이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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