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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비범 May 04. 2024

엄마를 놓지 못하는 이유

보통 딸들이 그렇듯

엄마를 놓지 못한 건 5할은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 해도 그럴 리가 없다고 이해 못 하는 것들이지만, 5할은 엄마의 삶을 이해해 버렸기 때문이다. 애착이 높은 사람에게 미움받기 싫어 본능적으로 합리화를 해버린 것인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이해를 하려 한 건지를 묻는다면 전자 아닐까.

어린 나는 사랑보다 두려움이 컸을 것이다.

왜 저렇게 나를 바닥으로 내려치고 짓밟으려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내가 스스로 바닥으로 내려가 다신 올라오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2남 2녀의 첫째로 그때 대부분의 집안이 그렇듯 딸이고 첫째기에 대학은 당연히 가지 못했고, 두 남동생의 뒤에서 묵묵히 그 무게에 힘을 싣는 역할을 임했다. 하지만 똑똑한 그녀는 자신의 힘으로 대학도 가고 그럴듯한 자영업자가 되었다. 이 두줄의 인생이 있기까지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형제들에게서 자신을 온전히 지켜내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그렇기에 자신을 똑 닮은 딸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 바라면서도, 조금은 자신같이 희생하기를 바라면서도, 또 조금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상반된 마음은 내내 공존했으니 어떤 날은 마음 같지 않은 딸이 밉다가도 또 그마저도 자신 같아 사랑했을 것이다.


이 마음을 알아버린 나는 엄마가 그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을 지켜주고 싶기도 했고 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음에도 여전히 미운 마음을 놓지 못하는 엄마처럼 살기 싫기도 했다. 오랜 고민은 짧은 답을 내놓았다. 엄마랑 함께 하는 대신 나도 그 안에서 행복한 것. 그렇다면 나는 만약 엄마가 죽음 앞에 선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대단하게 우리를 길러낸 우리 엄마였음을, 그 고생 속에서도 나를 사랑으로 키웠음을 그리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비단 엄마의 죽음 이후뿐만이었을까. 남들과 같이 사랑받는 모습으로 내비쳤음 하는 마음이 자주 일렁거렸기 때문이다. 내가 내 가정을 화목하게 만든다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남들은 내게 정말 사랑받고 바르게 자랐다고 하지 않을까라는 갈증이 조금은 해소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이 있다. 사람은 한계에 도달하면 앞뒤를 볼 수 없게 된다. 내가 몇 년 전 첫 직장을 퇴사했을 때처럼. 이직할 곳을 구한 곳도 아니고, 집문제도 남아있었으며 그 뒤의 종착역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지금 당장 여기가 아니면 된다는 생각. 분명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그런 바닥을 보고 엄마와 다시는 연을 붙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인데. 이 글을 보며 기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 또한 수없이 내 이성이 바닥났음을 느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그 바닥이 남았기에 여기에 와있는 것이다. 정말 본인의 바닥이 보였고 더 이상 여기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찾아 멀리가 버리 길 바란다. 지금의 내 선택이 best일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그저 좋은 감정만 이 글에서 가져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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