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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비범 May 11. 2024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관계의 진리가 되는 말

많은 학생들 앞에서 맞은 것, 머리가 정말 어지러운데 연기하지 말라며 더 맞은 것, 친구가 없던 기간에 이래서 네가 친구가 없다며 마음을 무너뜨린 것, 몇 대를 맞으면 되냐는 말에 자신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맞아야 한다는 것, 내가 미워하는 앤 걸 알면서도 그 아이의 반이라도 닮으라며 몇 년을 말한 것. 엄마는 여기에서 얼마큼을 담아 자신의 기억에 가져갔을까. 이 문장을 쓰면서도 내 안에 어떤 부분이 꿈틀대어 잠깐 몸을 가만히 두는데 집중했다.

그만큼의 사랑도 있었기에 엄마옆에 머물게 된 것이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되어 지금의 우리 관계가 됐겠는가. 분명 한쪽은 무너졌지만 손을 잡은 것인데.


엄마의 기억 속의 엄마는 아마도 미화된 듯하다. 나 또한 그걸 마주하는 엄마를 보는 게 어렵기에 자세히 말하지 않지만, 노출을 해 보이면 엄마는 대번에 네가 그만큼 잘못했을 거고 나는 그만큼 화가 났겠지.라고 대화를 끝내고 싶어 한다. 나는 그 잠깐 순간의 자신을 마주하고 있는 엄마가 안쓰러워 줄곧 대화를 그만두곤 했다. 나를 때렸을 엄마는 내가 안쓰럽지 않았을까.


체벌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나는 체벌 집안이었으나, 그만큼 저는 말썽쟁이였고 그래서 엄마가 저를 때릴 수밖에 없었다며 내 잘못을 과장해서 말하곤 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 적도 많았다. 내가 좀 더 얌전한 아이였다면 내가 순둥 한 아이였다면 엄마가 덜 때리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합리화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내가 그런 집안에서 자랐다는 창피함을 무릅써야 했고 또 엄마를 미워하는 게 불가피했는데 두 가지 다 정말이지 죽기보다 싫은 것들이었다. 엄마를 미워하게 된다면 정말 내가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갑갑한 무한  굴레를 벗어나게 된 일은 너무 찰나였다. 7살 아이가 있는 박사님이 자신의 아이가 너무 말을 안 듣는다며 우리에게 종일 하소연을 하고 있을 때였다.

- 박사: 다들 부모님이 때리는 거 이해해야 해. 그건 다 사랑해서거든

- 석사선배: 그래도 그 정도로 때리실 것까지는 아니던데요.

나는 며칠간 저 한마디가 머릿속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에 인상이 깊었던 건 그 말에 부모님에 대한 미움을 꾹꾹 눌러 담은 듯한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한마디가 뭐라고 나는 그제야 엄마를 증오하지 않아도 엄마를 가볍게 미워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꼭 드라마에 나오는 밉상인데도 계속 친구를 하는 등장인물들처럼 말이다. 나는 엄마를 이해하고 또 함께하기 위해 몇 톤의 감정을 쏟아내고 있음을 동시에 알았다. 무거웠던 덩어리가 누가 들어주는 것처럼 정말이지 한결 나아졌다.


그냥 그때의 엄마는 잘못한 것이 맞다. 엄마가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였든, 자식에게 무자비한 폭력이었으며 가족의 마음을 모두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실수였다. 엄마에게 그 모든 걸 마주하게 할 생각은 없다. 내가 이해하지 않는다고 해서 엄마가 꼭 벌을 받아야 하는 인과응보 중점의 드라마는 내게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이제 그 일을 마주 할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그 당시의 일을 마주할 때가 오면 그때 당신은 내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 이 정도의 변화만으로도 나는 그 앞을 나아갈 힘이 넘쳤다.


이글의 초점은 이런 환경의 내가 나아진 방법이지, 어떻게 복수를 했는지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생각의 변화는 날카로운 칼은 못돼도 엄마의 눈을 씻는 연못이 되었다.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 모든 순간을 수백 번 마주하며 자신을 갉아먹지 않길, 만나보지 못한 당신을 위해 나는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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