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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비범 May 18. 2024

누구도 믿지 못한다는 것은(1)

꼭대기라 추운 건지 지옥이라 끔찍한 건지

엄마는 나를 위해 누구도 믿지 말라고 했을까. 자신을 위해 누구도 믿지 못하게 했을까.


학원선생님이었던 엄마에게 나의 태도와 성적은 자신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의 이미지는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떡하니 성적을 잘 받아오며 예의가 바른 예쁜 딸이었다.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지만 조금 더 명확한 사실은, 나는 스스로 동기부여를 받지 않으면 타의로 인해 행동을 취하지 않는 아집을 가진 사람인 것이다. 또한 엄마는 ‘최선을 다하면 된다’라는 주관적인 척도를 내세워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최선을 다한 것이냐며 자신은 그렇게 판단되지 않는다고 매를 들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잘 맞물린 게, 나 또한 공부에 대한 욕심이 있었기에 평소에는 열심히 하지 않아도 성적에 대한 승부욕이 커 어떻게든 해내는 아이였다. 그러니 오빠가 있음에도 엄마 눈엔 마냥 내가 예쁜 딸 아니었을까.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나도 엄마학원을 다니는 학생이었기에 당연히 그곳의 원생은 나의 친구기도 했다. 나는 목숨보다 친구가 더 소중한 때를 지나고 있었고 내가 가진 모든 생각들을 공유하고 싶어 했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은 때에는 엄마는 자신의 얼굴을 위해 거짓말을 보태어 원생들에게 말을 했고, 사건은 실제 내 성적을 알고 있는 아이의 반문에서 일어났다. 그날은 정말 많이 맞았고, 귀에 박혀서 피가 날 때까지 한 말은 그 누구도 믿지 말아라. 누가 네 뒤에서 칼을 꽂을지 모른다였는데, 그 어린 나는 정말로 엄마의 얼굴에 내가 먹칠을 한 것 같아 앞으로 모든 사람을 믿지 않겠노라고 내 안 좋은 면은 모두 내 속에 감추겠노라고 다짐했다.

누구도 믿지 말라고 한 말의 얕은 근거는 당신은 사업을 해보니, 아무도 믿지 않는 게 성공에 닿는 길이였다는 것인데, 정말 그건 날 위해였을까. 자신의 영위를 위해 나를 가둬 둔 것이 아닐까란 생갈을 이따금씩 했으나, 어떤 진실을 마주하든 더 내려갈 바닥이 없어 이내 생각을 멈추길 반복했던 듯하다.


나는 엄마가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또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나보다 작은 엄마는 내가 기댈 유일한 바위기도 했다. 엄마의 두 번째 모토. 후회하지 말 것, 남탓하지 말 것.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 와서 생각하지만 통속의 뇌처럼 이게 정말 나인지, 엄마가 날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인지 가끔은 인지하는데 힘써보기도 한다.


나는 그 누구도 믿지 않는 것, 후회와 남 탓을 하지 않는 것의 비어있고 큰 틈을 언제 마주했을까. 태도에 마음을 먹은 것은 아마 중학교 1학년때였을 것이다. 학창 시절 동안은 정말이지 마음속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학교에 가면 늘 친구들이 있기에 내 주변이 내내 가득 채워져 있어 틈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도 믿지 않으니 사건이 있어도 빠져나오기도 쉬웠으며,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기도, 모두가 날 좋아하게도 만들기도 쉬웠다. 하지만 20살이 되고 대학을 서울로 가면서부터 그 틈은 이미 내가 손쓸 수 없음을 깨달았다.

믿지 못하는 나는 곁을 주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나는 무리를 짓지 못했다. 그렇기에 남아있는 중학교 고등학교 친구가 소수이며 그마저도 내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다. 조금 더 주체적으로 살게 되는 대학생활부터 그 부재는 나를 계속해서 목마르게 했고 해결 못하는 외로움에서 끝없이 방황했다. 당황스러운 감정을 마주한 나는 어쩌지를 못하고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을 타고난 것이라 생각하며 이 괴로움이 언제 끝이 나는 것인지, 지나가기는 하는 것인지 몇 년을 그렇게 내가 만든 감옥에 갇혀 울었다.


어떻게 마주했는지, 그리고 그의 해결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다음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글을 감정으로 써서 인지 어딘가 또 콕콕 쑤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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