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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비범 Jun 02. 2024

그때 당신은 내게 상처였다고

말해도 돼

요즘 내내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를 썼는데 이번엔 해결에 초점을 맞춰볼까 한다.


티브이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편이 아니기에 SNS에서 중요한 부분만 잘라서 올라오는 게시글을 종종 보는데, 거기서 오은영 선생님이 한 말에 대한 게시글을 본 적이 있다. 부모님에게 그때 상처받았다고 말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맞다. 어떤 관계의 개선은 그때의 실수에 대해 없던 것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는 것이니까.


차를 타고 마트를 가던 날, 엄마는 자신의 친구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자신의 친구 딸이 나이가 30인데, 아버지가 때려서 도망쳐 나왔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내용이었다. 어째서 저 아버지는 다 큰딸을 아직도 때릴까. 아직도 이런 환경이 있고 거기에 내가 공존하고 있다는 게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뒤에 따라 나오는 엄마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던 게 엄마는 그 아버지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딸이 아버지를 신고할 수 있냐며 화를 내는 것이었다.

부끄러웠다. 엄마는 내가 없는 곳에서 남들에게 자신의 바닥을 보여주고 다녔을 것에.


비범(이하 ‘비’): 엄마 그게 사람이 할 짓이야? 30넘은 딸을 때리고 문을 부수는 게? 말이 안 통해서 때리는 거야? 대단한 잘못이라도 한 거야?

엄마(이하 ‘엄’): 아무리 그래도 자식이 아버지를 고소하는 게 말이 되니?

비: 폭력을 휘두르는 가족이 무슨 가족이야. 남보다 못한 거지.

엄: 그게 무슨 말이야.

비: 난 엄마가 날 아직도 그렇게 때리면 나 또한 엄마를 신고했을 거야.

엄: 어떻게 부모한테 그렇게 말을 해?

비: 엄마 나는 그때 아무리 생가해도 내가 그렇게 맞을 정도로 나쁜 딸도 아니었고 그렇게 사고를 치지도 않았어.

엄: 네가 그때 그만큼 날 화나게 했나 보지.

비: 이것 봐 엄마는 그때의 내 잘못을 기억 못 하잖아. 그럼 그렇게 큰 잘못이 아니었던 거거든. 나 또한 내 잘못이 기억이 안 나. 처음엔 생각이 났겠지. 근데 아픈 기억이 더커. 지금은 안나. 그냥 맞은 기억만 나.

엄: 부모는 자식을 잘 키우려고 하는 거야. 맨날 거기에 머물러 살 거야? 그리고 부모한테 말버릇이 뭐니?

비: 엄마는 매번 엄마가 불리할 때만 예의를 찾더라. 우리의 논점은 그게 아니잖아.

엄: 내가 아무 이유 없이 널 때렸니? 네가 아무것도 잘못 안 했는데? 부모는 그럴 수 있는 거야(무한 반복 시작)

비: 알겠어 엄마. 엄마는 그럼 그냥 그렇게 생각해. 나는 앞으로도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어. 분명 나는 그게 너무 상처라 엄마아빠가 제발 이혼하길 밤마다 빌었고 그 어린 내가 살기 힘들다고 생각했다는 게 서러워.

엄: 너 어떻게 말을 그렇게 하니?!


그때 마침 마트를 도착했고 그냥 나는 엄마의 감정과 상관없이 나는 나대로 가족과의 일을 마무리하고 일을 하러 갔다. 그렇게 몇 주가 흘렀고 다시 엄마를 만나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있었다. 엄마는 밥을 먹다가 나지막이 “비범아 엄마가 미안하다. 생각을 해봤는데, 그때의 내가 너한테 심했던 게 맞다”라고 짧게 말했다. 그 충격은 아직도 내게 생생히 남아있다.

엄마가 사과라니. 나 또한 엄마에게 변한 딸이지만 엄마도 그동안 변하고 있었다는 것에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그리고 감사했다. 우리 엄마가 입체적 인물이었다는 것에.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큰 바위도 바람에 깎이기 마련이란 걸 왜 몰랐을까. 엄마는 내가 가고 나서 내내 나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버르장머리 없는 딸이 아니라, 딸이 느꼈을 감정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이전에 쓴 글에서 관계를 바꾸기 시작한 것은 두 글자였지만, 사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우리는 점점 급속도로 화해하기 시작했다.

이번 화가 있기까지 나는 수천번의 바람이 되어 엄마를 깎았다. 하루 만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깎여준 엄마가 내 엄마라는 것이 감사했다. 이 일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된 결정적인 일이면서도, 올릴까 망설이게 된 일이기도 했다. 모든 부모들이 깎이는 바위가 아닐 것이기에.


이 오랜 여정에 함께 하지 않아도 좋으니 당신이 어제보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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