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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비범 May 25. 2024

누구도 믿지 못한다는 것은(2)

엉엉 울어버린 나에게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내 안의 외로움은 채워지지가 않았다. 남들과 달리 유독 이 갈증이 채워지지 않음을 깨닫게 된 나는 퍽 괴로웠다. 게다가 후회까지 하지 말자는 내 모토는 마른 장작에 불을 질러 버려 태워버리는 격이었다. 그전을 탓해서 의미가 없으니 앞으로 내가 잘 이 외로움을 채워보겠다는 다짐을 해보지만 정말 어떻게?라는 질문으로 고민은 끝이 나기 마련이었다.


크게 두 가지를 말하겠다. 그 원인을 찾은 것과 해결 아닌 해결.


원인은 생각의 꼬리를 몇 년을 쫓아 찾게 되었다. 하루종일 친구를 만나고 와도 공허하고, 혼자 잘 있는 친구들을 보며 외로움을 타지 않음을 부러워 자괴감으로 채운 파괴적인 생각을 계속하던 중이었다. 이내 멈추기를 반복했지만 어느 날은 한걸음 또 다른 날은 두 걸음 그 생각의 끝을 계속해서 쫓아갔다. 왜?라는 의문과 함께.


친구를 만나고 오면 왜 공허할까? 친구가 나만을 위해 집중하지 않은 거 같아서. 왜 그렇게 생각을 했을까? 친구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묘사할 때 마냥 웃을 수가 없어서. 왜 웃을 수 없었나? 나도 그 친구의 그런 친구가 되고 싶어서. 왜 되지 못했나? 내가 그 친구와 공유하는 시간이 적어서. 공유하는 말들이 적어서.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사실은 당연하나, 나는 비겁하게 그 사람이 내가 내어주지 않아도 더 사랑해 주길 바라고 있음을 알았다. 무리를 짓지 못하는 데에는 나는 그들과 평생 이 분위기를 유지할 자신이 없었고, 언젠가는 무언가(예상할 수 없는)에 부딪히겠지라는 막연한 바보 같은 두려움에 도망가곤 했기 때문이었다.

간단히 묘사했지만, 내 외로움과 내 성격, 그리고 엄마로 인한 원인이었다는 그 관계성을 깨닫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원인을 알았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바뀔 마음이 없는 나 자신이었다. 나 자신을 다 내어주지 않았으니 당연히 감정은 가벼웠고 그만큼 통제하기도 쉬웠다. 즉 상대에게 실망할 일도 기대할 일도 없으니 모든 인간관계가 얕고 쉬운 것이었다. 깊은 관계에서 주는 불편함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나의 고고함을 지키는 길이라고 까지도 생각했다.

아주 조금은 나은 게, 내가 원인을 알았으니 이 지독한 외로움을 내손으로 끊을 수 있는 순간이 올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손을 맞잡아줄 상대도 있어야겠지만.


여기엔 뒤틀린 감정도 숨어있었다. 내 안에서 늘 소리치던 것이 생겼는데. “다 엄마 때문”이라는 외침이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어느샌가 그 생각은 뿌리를 깊게 내려 ’ 원망‘이라는 아픈 단어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남 탓을 하지 말고 후회도 하지 말자라고 되뇌는 내 다짐뒤에 그 원망은 숨어서 날 보고 항상 비웃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안 속이 다 부서졌는데 멀쩡한 모습으로 서있으려니 어느 순간부터 다 부서질 것 같다는 생각이 멈추질 못했다.


친구랑 싸웠던 날이었던가. 오래 만난 남자친구와 싸웠던 날이었던가. 본가에서 소파에 앉아있던 나는 갑자기 서러움이 몰려와 엄마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나는 엄마 때문에 그간 너무 힘들었다고. 엄마가 매번 누구도 믿지 말라고 해서, 매번 후회하지도 말고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라고 해서 그냥 내 안이 다 썩어 버렸다고. 그래서 나는 마음하나 내주는 친구도 없고, 늘 외롭고 다 내 탓이라고 생각하고 산다고. 다 엄마 때문이라고. 엄마 때문에 나는 너무 외롭고 힘들다고.


당황한 엄마는 그게 왜 자기 탓이냐고 하다가 멈추지 않는 내 울음에 이내 미안하다고 했다. 이때의 시점은 엄마와 내가 관계의 진전 중에 있었기에, 엄마는 내 말에 화를 내지 않고 정말 미안하다며 내내 사과를 했다. 한참을 운 나는 여태까지 겪어 보지 못한 거대한 안정감을 마주했다. 마음이 내내 가라앉아 포근함에 범벅된 듯했다.

늘 나 혼자 괜찮다며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된다며 앞만을 본 어리고 안쓰러웠던 내게 누군가 손을 내민 것만 같았다.


요즘의 나는 나의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내 주변사람에게 조금씩 내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그만큼 관계의 돈독함도 올라가고 있고, 또 이제는 혼자 있다 하더라도 나만의 정원을 가꿔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의 필요성과 나 또한 인간이니 사람과 관계를 섞으며 살아가야 함을 깨달았다. 또 그러기 위해선 내가 단단해야 하기에 혼자인 나를 잘 돌봐주려 애쓰고 있다.


하나씩 나는 고쳐나가고 있었다. 엄마와 관계를 끊었다면 내 이런 나쁜 생각의 습관의 끝을 잡아내 매듭지을 수 있었을까?

매듭짓지 않아도 나만의 정원을 잘 가꿀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더 쉽게 가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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