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비범 Jun 08. 2024

늦은 사춘기

나는 천주교인이다. 그래서 가끔 어떤 일이 있을 때 주님게 지혜를 달라고 기도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지혜는 잘 나에게 오지 않는 듯하다. 


엄마와의 수직적인 관계가 무너진 시점부터, 나는 늦은 사춘기가 왔다. 그때 하지 못한 내 말들은 끊임없이 터져 나오길 반복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너무나 쉬웠다. 

'나도 엄마와 동등하다, 혹은 나도 그 위를 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을까. 애초에 그런 개념 자체가 싫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그렇게 생각하게 됐을까. 엄마의 두껍고 무거운 문은 열림과 동시에 내가 들어가 마구 들쑤셔 놓았다. 복수라도 하듯 기회만 있으면 엄마한테 따지기를 반복했다.


멈췄던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빨리 감기를 하듯 그때 왜 그랬냐며 엄마를 계속해서 쏘아붙였고 엄마는 미안해하다가도 나의 변화에 충격과 상처를 많이 받았다. 또 예전처럼 강압적이지 못한 엄마를 보는데 안쓰러워 또 화가 났다. 내 안의 어딘가 고장이라도 난 듯 내 기분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내 안의 화를 어느 정도 덜어내고 나니 균형이 맞춰졌고 그러면서 우리 사이에 볕이 들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상적인 화해는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길이 있었을까 싶으면서도, 그랬기 때문에 지금이 온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의 부모는 어떤 마음일까. 엄마는 나름 내 두번의 사춘기를 겪었을 텐데 이제서야 미안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의 나는 당연히 엄마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내가 힘들었으니. 

20대 중반의 나는 여전히 어렸고 철이 없었다. 엄마에게 지금 나는 성장한 아이일까. 아픈 손가락일까.





*이직과 이사 등의 일로 7월부터 다시 연재하려고 합니다.




이전 10화 그때 당신은 내게 상처였다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