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내기

남편 없이 세 아이들과 서울살이 1년...

by 글방지기 감호

남편이 강릉에 가고

나와 아이들은 서울에 남았다.

그리고 바쁘고, 처절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때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

둘째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차례로 확진됐다.

혼자서 세 아이를 각 방에 넣어두고

밥상을 따로 차려가며 먹이고,

열체크하며 약 먹이고, 달래며

그야말로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세 아이들과 나 역시 격리해제가 되었는데,

그제야 내가 끙끙 앓아누웠다.

혼자서 일하고, 아이 셋을 돌보는 일.

괜찮다, 끄떡없다 했지만

결국 나는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걸 마주하게 됐다.


☁️ 코로나 에피소드 하나

나는 복지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방문자와 접촉이 많아

누군가 확진자 동선에 포함되기라도 하면

직원 가족까지도 모두 검사를 받아야 했다.

어느 날, 아이들을 집에 들여보내고

급히 선별진료소로 향했다.

다행히 큰일 없이 마치고

후다닥 집으로 돌아오던 길,

우리 아이들이 경찰관 분들과 함께

집 앞 골목을 들어가고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급히 뛰어가 경찰관 분들께 상황설명을 듣고

아이들을 인계받았다.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날 아이들은 집에 있다

갑자기 놀이터로 나갔단다.

조금 놀다가 추워서 집에 바로 들어왔는데,

문제는 현관 도어락.

비밀번호를 몰랐던 아이들은

집에 다시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이 기특한(?) 아이들은

편의점까지 걸어가 도움을 요청했고,

결국 경찰관 분들이 함께 집으로 데려다준 것이었다.

그날, 내 심장은 발끝에 쿵 내려앉았다.

놀람과 안도의 하루였다.

경찰관 분께 90도로 인사를

몇 번이나 드렸는지 모른다.


이 시기의 나는

‘떠날 준비’라기보다,

정말 열심히 1년을 버텨냈다.

지속가능발전교육과 환경교육도 배우고,

청년학습모임도 운영해 보면서 준비했다.


코로나와의 사투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서야

우리는 본격적으로 내려갈 준비를 시작했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정든 일터와도

작별을 했다.

그리고 강릉에 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제 진짜,

서울살이를 정리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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