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안다는 착각

사람 속은 모른다

by 유영하는우주인


폭염의 나날들



우리는 흔히들, 타인을 나를 많이 안다라고 착각한다. 착각이다. 맘을 고쳐 먹길 바란다. 그것이 당신의 삶을 이롭게 할지니. 옛말에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댔다. 그 말이 진리였다. 지나고보면 참 많은 이야기들이 나의 삶을 살게 했다. 삶의 지속성은 거기에 있었다.


나는 넘겨짚지 않는다. 타인은 언제나 내게 처음이다. 그것이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라고 해도 말이다. 가족도. 그리고 나조차도. 가끔 나는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때로 내 속을 모를 때도 있다.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하하, 참 이상한 일이다.


괜찮다. 배움은 늘 즐거운 법이다. 너무 복잡한 공식은 아니더라. 나의 나날들에 쌓일 수록 만나는 이들도 많아진다. 허나 누구 하나 정의내릴 수 없었다. 정의란 구현하는 것이며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인간을 복잡한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 어제 좋았던 하늘이 오늘은 별로다. 이상하게도 그게 맞다. 이상한게 인간이다. 고대부터 수많은 이들을 정의내리고자 했지만 실패했다. 대신 다양성을 맛보고 있다.


그것이 삶의 재미 아닐까 한다. 발견은 인간의 삶을 더욱 의미있고 풍족하게 했다. 불의 발견을 기억하라. 그런 고로 현대 문명에서 또한 이 진리는 작용하리라 생각한다. 맞다. 그러므로 속단하지 않기를. 그런 판단은 고이 접어 두라. 상황을 보라. 그리고 생각하라. 앞서 가지 않길 바란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건, 물론 얼굴에서 성격이 드러나는 건 맞지만 인간은 예측불허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사실이 좋다. 기분 나쁜 표정으로 비행기에 오른 승객이 사실은 마음 따뜻한 사람일 수 있으며 선한 표정을 짓지만 실은 내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승객일 수도 있다. 나는, 절대로 속단하지 않는다. 속단은 금물이다.


물론 국적이나 성별, 연령에 따른 편견이 있긴 하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의 나는, 그런 걸로 빠른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나는, 그래야만 한다. 나조차도 나를 모를 때가 있거늘, 어찌 타인을 알겠느냐. 때로 그것은 실례가 될 수 있다. 나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빚을 지고 싶지 않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다. 메뉴얼을 잘 지키는 편이다. 기내 안전이 최우선 과제인 직업을 가진 만큼, 메뉴얼과 안전은 나에게 철칙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나를 잘 알아챈 것이다. 날 뽑아준 그녀는. 참 신기한 일이다. 수많은 지원자 중 나를 지목한 것은, 운명이었고 나에겐 큰 운이었으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어떻게 나를 알았을까. 끝까지 웃으려고 입술 끝을 파르르 떨면서도, 웃어대던 나를 보고 감동했을까. 참 궁금하다.


하지만 나는 늘 예외를 두는 유연성도 가졌다. 메뉴얼이 아니라 상황에 대해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속단하지 않는 것은 나의 예외이다. 예외를 두는 것은 좋다. 삶은, 생각보다 고정적이지 않으며 수많은 변수를 안고 간다. 나는 수학자는 아니지만 변수를 생각한다. 예외는 늘 있다. 이건 마음의 여유라고 생각해두는 편이 좋다. 마음 한 켠에 여유가 없으면 사람은 피폐해진다. 피폐함은 나를 갉아먹고, 종래에는 이야기의 끝을 볼지도 모른다. 때로 당신은 우울하거나 슬프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때이다. 매몰되지 않기를. 방법을 찾길 바란다. 인생에 늘 예외란 있는 법이니까. 그 예외로 당신이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면 나는 참 행복할 것이다. 오늘도 당신과 나의 행복을 응원한다. 안녕, 또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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