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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하는우주인 Aug 28. 2024

하늘 이야기 겸 하늘로 향한 방법

유영하는 곳 : 하늘, 날개를 갖춘 나  

너와 나의 프랑크프루트


유영하는 곳 : 하늘, 날개를 갖춘 나 




     영어를 했음에도, 갈피를 못 잡아 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학원 대행으로 첫번째 항공사에 입사했다. 첫 면접이니, 경험삼아 시도했는데 그것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회사의 사정으로 짧은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동기들은 하나둘 현재의 항공사에 조인했다. 나도 같은 목표가 있었기에, 면접을 준비하고 돈이 벌리면 부리나케 해외 면접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매번 첫번째 코스에서 고배를 마셨다. 펑펑 울던 성당의 기억이 생생하다. 거기는 바르샤바였는데 다시 비행으로 가니 감흥이 묘했다. 참 뿌듯하면서도, 내가 고생을 많이 했구나 하면서 맛난 것도 많이 사주었다. 


내가 수많은 실패 앞에서도 꿋꿋하게 일어서면서 느낀 것은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때를 위해 한없이 준비해야 한다. 때와 시기, 운이 맞춰질 때를 위해서 말이다. 


그 시기를 기다리는 일은 무척이나 지루했다. 하지만 희망은 무서운 힘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미래였으나 나는 참을 수 있었다. 이 정도는 해낼 수 있었다.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희망의 증거를 보았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였다. 나의 의지. 오늘도 일어나 할 일을 해내는 나. 나의 동력. 그러나 나는 불투명한 미래에 때론 괴로웠다.


코로나로 현재의 회사가 크루들을 정리할 때에도 나는 어느 정도 꿋꿋했지만 내가 스스로 확신이 없을 때에 무너졌다. 그리고 며칠을 두문불출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시간과 노력으로 인해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때로 나를 잃었지만 늘 나를 믿었다. 막연한 믿은과 희망일지라도 나는 나를 믿어줬다.


나는 그러한 과정들이 나를 성장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들을 견디지 않았다면 나는 나로서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힘을 생각보다 강하다. 그리고 나는 그쯤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어른들이, 하고 싶은 일이 없으면 차라리 일을 바로 시작하더란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물론 내가 공부했던 시간들이 아깝다는 건 아니지만 그 말의 중요한 의미를 알았다. 일은 당신을 풍요롭게 한다. 안다. 일은 힘들다. 남의 돈 벌어먹기는 힘들다. 그렇기에, 당신은 일을 해야 한다. 돈의 가치와 사회성을 기르는 데에 집중하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교정을 시작한 건,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면접관들이 나의 이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돌려 거절한 그 행동이 내내 충격이었다. 아랫니가 고르지 못했고, 나는 동생의 권유로 교정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내게 무섭지 않느냐고 물으셨다. 그러나 꿈 앞에서 나는 보다 이성적이었다. 사실 나는 낭만주의자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나는, 해내기 위해 교정을 결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관리도 쉬워졌고 웃을 때에도 또 편해졌기에, 내게는 이득이었다. 그러나 다들 소신대로 결정하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내내 영어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이건 나의 장점인데, 난 사실 영어를 좋아한다. 영어로 말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느꼈기에 중학교 때부터 하루에 100개씩 단어를 외웠다. 이 흥미를 발견한 은사님 덕분에 나는 공부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지금 쓰는 대부분의 어휘들이 그때 정착된 것들이다. 그 당시 영어 선생님께서, 지금 외우는 모든 것이 너희의 향후 영어 사용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었는데 그건 사실이었다. 얼마나 생생하냐면, 그날의 분위기, 향기,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까지 다 기억난다. 아무튼 그랬다. 


사실 면접은 그리 많이 준비하지 않았다. 이미 100문 100답은 마르고 닳도록 해냈고 그냥 약간의 업데이트만 준비하면 되었다. 그러나 약간의 게으름으로 하는 둥 마는 둥, 긴장감도 많이 느낀 것 같다. 어쨌든 초대장을 받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물론 지방에 살았기 때문에 숙소를 예약했다. 3일간 진행되는 와중에, 하루라도 떨어질까 하루만 예약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계속, 연장했다. 그리고 나는 하고 많은 지역 중 가장 치열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한국에서 꿈을 이뤘다. 다음날 바로 전신 사진을 업로드 하라는 메일이 왔다. 단체 채팅방이 뜨거워졌다. 3일간의 대장정에 지친 나는 느지막하게 눈을 떠 메일을 확인했다. 마침내, 내가 원하던 항공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외국 항공사는 말 바꾸기로 유명해서 출발 날짜가 담긴 티켓을 받기 전까지 나는 잠자코 있었다. 친구들에게도 딱히 말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손에 상처가 나서 치료 후 사진을 새로 업데이트 해야 했고, 와중에 면접관과도 두 차례 통화를 했다. 내 조이닝 과정은 빠른 편이었지만, 한 달이나 미뤄지니 나도 조금 애가 탔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통화에서, 며칠에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꿈의 항공사에 내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 과정은 시작에 불과했다. 무시무시한 트레이닝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8주간 나는 코를 박고 공부해야만 통과할 수 있었다. 영어 실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성실성과 지구력, 내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었다. 아자. 어떻게든 해내보자. 슬슬 가족과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외국에 또 나가게 되었다고. 다들 엄청난 축하와 환영을 보냈다. 뿌듯하고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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