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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하는우주인 Sep 10. 2024

하늘 이야기 6

그럼에도 우리는 일합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럼에도 우리는 일합니다. 



       언제나 비행은 마무리된다. 우리는 어떻게든 그 비행을 끝낸다. 그동안 캐빈에서 서비스를 하면서(트레이를 나눠 주면서) 캡틴의 PA를 들은 적이 딱 두 번 있는데, 한 번은 카이로 비행이었고 또 한 번은 바로 어제 프랑크푸르트 비행이었다. 이는 아주 비정상적인 일이다. 그쯤 우리는 갤리에서 밥을 먹거나 수다를 떨고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비스가 완전히 끝날 즈음이기에 다들 랜딩하기를 기다린다. 캡틴의 PA를 들으며 가끔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손님들처럼 우리도 랜딩을 좋아한다. 그 PA는 곧 우리가 지상에 안착할 것을 의미하기에, 아주 이상하다. 이는 우리가 엄청나게 바쁘거나 혹은 제대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해 딜레이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슬픈 일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우리는 서비스를 끝내고 랜딩 준비를 한다.  손이 빠른 사람이 있다면, 느린 사람을 돕고 정리에 능한 사람이라면, 지저분한 갤리를 정리한다. 대개 갤리 정리는 갤리 오퍼레이터, 갤리의 장이랄까 그의 몫이기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나머지는 갤리 어시스트를 제외하면 캐빈을 돌봐야 한다. 


생각해보면 첫 한 달에서 두 달은 어떻게 비행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뭘 잘 해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나보다 먼저 비행한 시니어들이 있었기에 비행을 여차저차 마무리하게 됐다. 지금은 내가 그 시니어이다. 나는 정말 느린 사람도 상관없다. 말을 잘 못해도, 시키는 것만 하더라도 돕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를 존경한다. 하지만 게으른 것은 용납할 수가 없더라. 같은 임금을 받으면서 제 몫을 해내지 않는 사람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아프다면, 힘들다면 병가를 내면 된다. 미련한 짓은 그만두길. 


나는 일을 할 때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이미 진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대개 아시아인에 주어지는 갤리 오퍼레이터라는 포지션은 택배업, 식음료업, 서비스업의 총 집합체이다. 나는 택배 상하차며 레스토랑, 호텔 내 연회장, 미국 별다방에서 일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 내가 걸어온 길이 사실은 이 일에 다 필요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쨌든 그간의 경험이 내공이 되어 여기에서 유용하게 쓰고 있는 건 사실이다.


면접 당시에서 이전 회사에 외에 미국 별다방 경력을 흥미롭게 질문했었다. 면접관은 내게 레시피에 대해 물었고 어느 정도는 대외비여서 사실대로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인비를주었다. 이는 1차 관문 통과를 의미했다. 돌아보면, 이 회사는 로열티와 대외비에 관해선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그 점이 맘에 들었던 거라고 추측해본다. 또한 이코노미는 비중이 적긴 하지만 비즈니스에선 커피를 맛나게 만드는 일이 내게 큰 장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운명 같은 일이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인간은 일정한 업무를 수행하며 월급을 받고 생활을 꾸려 나가야 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사회적 활동은 꼭 필요하며, 고립되면 상황은 악화된다. 아무리 소위 집순이라고 해도 일정한 사회적 활동이 이어져야만 한다. 어릴 땐 더 준비해서 좋은 데에 가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사실 돌아간다면 당장 취업부터 할 것 같다. 돈이 없어서 난감했던 적이 많다. 지금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지만, 그때는 돈이 참 무섭더라. 꼭 벼락부자가 되지 않더라도 한 달에 나오는 월급이 필요하니 일은 멈추지 않을테다.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도 어떻게 해서든 일을 할 것이다. 뭐든 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일이란 것에 대해 크게 생각했던 탓이 크다. 하지만 이 일을 해오면서, 직업은 나의 일부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직업이 전부인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들의 프라이드를 존중한다. 나는 다만 그들이 아닐 뿐. 나는 돈보다 워라밸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돈은 후순위였고 명예도 그닥 좇지 않는다. 나의 날들이 나로 채워지는 순간 더 행복하더라. 내가 이 곳에 와서 배운 가장 값진 교훈이 아닐까 한다. 나의 취향, 추구하는 바, 선호를 발견한 것이다. 지금이야 한 직업으로 평생 먹고 사는 삶이 줄었다지만, 내가 지금까지 버텨온 동안 힘들었지만 나는 얻은 것이 많았다. 


경험은 나다 라는 말을 지나가는 동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맞다. 이건 나였다. 나의 전부. 나의 자산. 나의 미래를 위한 투자, 그것은 바로 경험이다. 돈도 중요하다. 나도 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것은 돈처럼 쉽게 맞바꾸지 못한다. 그래서 내게 돈의 가치는 워라밸보다 못하다. 화폐는 가장 흔하다. 벌면 그만이다. 그러나 경험은 시기와 때를 놓치면 할 수 없거나 아주 어렵게 해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입사 후 회사에 많이 실망했지만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주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또한 다음이 궁금하기도 했다. 오랜 시간 덕일까,  그 경험 하나하나가 소중했다. 내가 못 하는 것, 잘 하는 것을 가려낼 수 있었다. 이것이 나의 자산이다. 이제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 구분하게 되었고 직업적으로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노선을 정할 수 있었다. 버티는 것이 답이 아닐 때도 있지만, 이번엔 내게 아주 큰 정답이었다. 


노선이 정해진 건 아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건 머물지 않을 거라는 거. 대학 시절 미국으로 1년 인턴십을 갔던 것도, 고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고이면 썩기 쉽더라.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시야를 넓히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아주 잘한 일이었다. 나를 믿고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께 감사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린 나를 홀로 미국 땅에 보냈던 부모님의 혜안이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나를 이를 발판삼아 외국에 나가는 일을 어렵지 않게 어겼으며 영어 실력도 지속적으로 쌓아갈 수 있었다. 계기는 작은 파동이었으나 결국 큰 물결이 되어 바다를 이룬 것이다.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나는 또 하나의 파도가 되어 물살을 만들어가기라 생각한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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