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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하는우주인 Sep 08. 2024

그리고 계속되는 하늘 이야기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맨체스터 비행, 딜레이로 산책행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인생이 영화처럼 2시간 내지 3시간만에 끝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영화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인생의 집약체일 수 있으나 현실이 아니기에, 나는 감상을 멈췄다. 그쯤 조금 힘들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성장의 계기였다. 그때에는 텔레비전도 안 봐서 사실 그 시절의 예능이나 드라마를 잘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인생이 지속됨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좀 더 행복해졌다. 나의 행복은 나의 몫. 그때부터 나는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나를 남에게 억지고 끼우지 않았으며 혼자 쇼핑을 하고 여행을 했다. 결과적으로 나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하늘은 높고, 채용 과정은 길고 복잡하다. 그러나 그 기간을 견뎌내지 않으면 40000 피트 이상의 상공으로 날아오를 수 없다. 무조건 참으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채용 시장에 흔한 말이 있는데 '하다 보면 언젠가 된다' 이다. 물론 취업도 똑같다. 그저 끝까지 시도하면 얻게 되는 것이다. 그 시기를 몰라 방황하고 우울하고 힘들 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인 그렇듯, 인생의 꿀팁은 인내다. 인내하는 자에게 뭔가 떨어진다. 콩고물이라도 얻어 먹고 싶다면 인내해야 한다. 견디는 건, 이를 해내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가장 흔한 예를 들어 보자. 2025년이 다가온다. 1월 2일, 헬스장은 사람들로 가득할 것이다. 허나 1월 30일이 되면 그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는지 찾아볼 수도 없을 것이다.


비행을 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운다. 특이한 것은 매 비행에선 늘 한 편의 파란만장한 영화가 펼쳐진다는 것이다. 레퍼토리는 비슷하지만 장르는 늘 다르다. 그래서 호텔로 들어가며 오늘의 장르는 이거였지 하고 생각할 때도 많다. 가끔은 재미나고 신나는 일도 많다. 하지만 그만큼 화나고 분노할 일도 펼쳐진다. 균형이 맞긴 어려운지, 안타깝게도 연달아 화가날 때도 있다. 나도 인간이므로. 한창 취업을 할 때에는 '이러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여~'라고 적었지만 정도가 있다. 삶에는 정도가 필요하다. 적당히 살아야 한다. 열심히 사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나는 오랜 경험으로 말미암아 적당히 '그냥' 살기로 했다.


막 비행을 시작했을 때 사이프러스에서 온 사무장님이 비행에 중독될 거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해가 간다. 좋아하냐 마느냐는 앞으로 내 또다른 노선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늘 그렇듯 선택은 나의 몫.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는데 이제야 알 것 같다. 경험은 나이다. 어떤 경험이든 내게 소중하다. 그래서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길 바란다. 멈춰 있더라도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마치 유명한 도서의 제목처럼. 내가 겪은 모든 것은 의미가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안다. 그것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으며 미래의 나를 또 다른 선상에 놓이게 할 거라는 것을. 그래서 요즘엔 경험이 좋다. 뜻하지 않은 일들이 생겨도, 경험치를 올리는 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게임처럼 인생을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대개 심각하고 진지한 사람이기에,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진지하다. 그 누구도 아닌 나의 인생. 소위 '나는 되고 너는 안 된다'라는 이상한 논리도 자신의 삶이 소중해서이리라 되도 않는 이해를 해본다. 나도 내 삶이 소중하다.


비행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나의 지평이 넓어졌다. 그래서 소위 앞선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우리는 국적이 다양해서, 가끔 어떤 크루는 나를 한국인의 전형으로 본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넘겨짚지 않기로 했다. 그것은 어쩌면 내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 물론 나도 편견이 있는 사람이다. 인간이기에, 이는 어쩔 수 없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개인을 그저 개인으로 보려고 한다. 너는 이렇구나 하고 또 배운다.


실망은 아주 순수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조인한 후 나도 많은 실망을 했다. 내 기준은 높았고 이 회사는 어쩌면 그에 맞지 않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는 건, 내가 원했고 이뤘기 때문이다. 실망도 나의 감정이다. 내가 배운 새로운 관점이다. 그러므로 결코 여기까지 온 시간들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망만 한 것은 아니기에 내가 지금까지 여기에서 버틴 거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인생에는 명과 암이 존재한다. 지금 나는 암보다는 명을 보려고 노력한다. 이미 많은 암을 보았으므로. 장점과 단점, 이같이 명확한 회사는 처음이다. 그러므로 장점을 즐기려고 노력해본다.


시도는 늘 값지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시도에서 무얼 배웠느냐?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나는 사람들의 시도를 좋아하며 온마음으로 응원한다. 믿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종교가 없음에도 카르마를 믿는다. 언젠가 그런 나쁜 맘은 당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 맘으로 남을 대하면 금방 티가 난다. 그래서 난 어떻게 해서든 다른 사람을 향한 악을 품지 않으려고 한다. 글을 쓰거나 산책을 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때론 제철인 꽃을 보낸다. 돌아오는 기쁨이 내게는 두 배로 더 큰 기쁨이 된다. 우리는 여름에 파란하늘에 어울리는 쨍한 장미를 즐기고 봄이면 찾아오는 개나리와 흐드러지는 벚꽃, 가을에 만날 수 있는 코스모스의 아름다움을 알아가며 동백꽃의 꿋꿋함을 알아갈 권리가 있다. 느낀 바, 나는 사계절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계절의 변화에 예민한 비염인이지만 어쨌든지 간에 나는 사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알아야 하는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앞으로 나의 길이 어디일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선명한 것은, 나는 나의 선호를 잘 안다는 것이다. 그게 하늘길이든 땅으로 향하든 나는 또 하루하루 꿋꿋하게 정진할 것이다. 걸어가다 힘들면 멈추고 숨을 고를 것이며 때론 뒤를 돌아볼 줄도 알 것이다. 나는 또 그렇게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 독일 비행이 예정돼 있는데 일요일이라 할 일이 뭐가 있을지 궁리해본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내시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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