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담장이 높다. 담장 밖에서 구경하는 두 사람은 키 차이가 나고 작은 사람은 담장 안 볼 수 없다. 상자를 '평등'하게 1개씩 나누어 주어 둘 다 올라서게 할 것인가? '공평'하게 키 작은 사람에게 몰아줄 것인가? 1개씩 '평등'하게 나눠주면 여전히 불평등하지만 몰아주면 키 작은 사람도 키 큰 사람처럼 담장 안 야구경기를 볼 수 있다.
당신은 어느 쪽 선택할 것인가?
그런데 잠깐! 선택지는 누가 주는가? 답 맞히려는 자는 왜 그 협소한 바운더리 안에서만 노는가? 이럴 때야말로 차원도약이 답이다. 문은 원래 없고 담은 부수는 것. 담장 부수면 된다.
2. 여자친구네 집 창문
여자친구가 말한다. "어제 집에 페인트칠 했다. 창을 닫으면 페인트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창을 열면 매연 때문에 기침 계속 나온다. 이거 창문 열어야 되나? 닫아야 되나?"
이때 정답 찾으려고 머리 굴리면 바보 된다. 보기 중에 고르지 말 것. 상황이 그 정도라면 여자친구 집이 문제 있는 것이다. 여친 걱정이 먼저다. 말이라도 이쁘게 하자. "뭐? 괘안나? 병원 가까? 페인트 냄새 빠질 동안 여행이라도 가까? 아이다. 그래가 안 되겠다. 아예 이사를 가자. "
여친은 당연히 자기 걱정 먼저 하는 남자를 좋아한다. 문제 맞히려고 정답 고르고 앉아 있는 애가 아니라.
3. 조주의 차
조주선사는 찾아오는 모든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일찍이 여기 와 본 적 있는가?" 이에 "와 본 적 있습니다." "와 본 적 없습니다." 라고 기계적으로 대답했던 스님들. 그 어떤 답을 하든 "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 했던 조주 선사.
그를 지켜보던 제자가 어느 날 묻는다. "왜 다 똑같이 차나 마시고 가라고 답하시는지요?" 이에 조주는 말한다. "자네도 차나 한 잔 마시고 가게."
염불 외듯 반사적으로 나오는 대답들. "응, 와 봤어." "아니, 못 와 봤어." 진짜 일찍이 조주가 있던 여기 이곳(!)에 와봤더라면 반가워서, 눈이 번쩍 뜨여서 차에나 머물던 동공 급히 조주의 눈으로 차원도약했을 것이다. 그리곤 그 눈 속에 깊이깊이 빠져 그윽한 미소 파문 일었을 것이다. 파문 번져 조주의 북 울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오늘날 <조주의 차>가 아니라 <조주의 북소리> 공안 전해졌을 터이다.
4.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똑똑한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질문에 파닥파닥 낚이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주어진 선택지 중에, 엄마나 아빠 중에 고르지 않는다. 새 판 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