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증가 법칙
세상 모든 일은 엔트로피 증가 법칙 하나로 설명된다.
질서가 무질서로
효율이 비효율로
유有가 무無로
100이 0으로
만유는 그렇게 마침내 0이 된다.
엔트로피 증가 법칙은 한마디로
효율성 감소 법칙이다.
우리 익히 알고 있는 그 법칙에 의하면
지상에 사는 생물은 물론 지구도 우주도
점점 부서져서 한 점 먼지가 된다.
먼지와 먼지 아닌 것의 경계 희미해진다.
밸런스 혹은 균일 그 자체가 된다.
너도 나도 평등해진다.
여기서 우리가 낚아채야 할 진실은
생명의 유한함에 대한 허무가 아니라
그 낭만적 정서가 아니라
다만 방향성이다.
시작이 100이라면 끝이 0이다.
그 사이에 우리 생이 있다.
방향성이 있다.
세상에 선악은 없고 정답은 없지만
옳은 방향은 있다.
엔트로피 증가하는 방향
즉, 시간 방향이다.
이름하여 우주론적 방향
우주는 전진한다.
세계는 유턴하지 않는다.
신神*은 새로움을 사랑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한다.
신은 가장 완전한 것
살아 숨 쉬는 것
우리가 바라보는 것
만유를 결속시키는 에너지
의사결정 일어나는 곳
우주의 중심
세계*의 중심이다.
신은 매 순간 새로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날마다 죽고 다시 태어나듯이.
그리하여 진화한다는 것은
‘현재’를 사는 것
과거도 미래도 아닌
‘이 순간’을 달리는 것
시대와 나란히 가는 것
역사는 잊지 말되 미지는 도모해야 한다.
과거 정리 정돈하고 미래 초대해야 한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수소연료전지 등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앞으로 돌격하는데
지금 이대로가 좋다
과거 세계관에 머물러 있겠다
우리 이너서클(inner circle)에 침범하지 말라
변하지 말자는 극우(?)란
우주 어느 한구석 그것 같은
잠시간의 국소적 퇴행
극우는 이념이 아니다.
자체 에너지가 아니다.
진보의 반작용
진보의 노화
뒤에서 진보 잡아당기는 반동의 흔적일 뿐
물론 0은 100과 같다.
끝이 시작이다.
끝나면 다시 시작된다.
지극한 보수는 역설적으로 진보에 기여한다.
결국 진보의 동력 된다.
극우도 사랑받아 마땅한,
우주 방향성에 역설적으로 기여하는
일등 공신이라는 결론
진보냐 보수냐 묻는 것은 어불성설
펄펄 살아있는가?
이제 늙어 서서히 죽어가는가?
이렇게 묻자.
애초 이념이란 다 거짓말
극우도 보수도 진보도 없다.
방향성이 있을 뿐이다.
엔트로피 증가하는 방향으로
우리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아직도 배가 고픈가? 꿈이 있는가? 더 나은 세상 향해 벽돌 한 장 쌓고 있는가? 그렇다면 100살이어도 펄펄 살아있는 것. 스무 살이어도 가만히 제 자리에 주저앉아 있다면 뒷방늙은이와 다름없는 것. 젊음과 늙음이란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구 자전과 공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패러다임은, 시대는, 우주 방향성은 우주가 살아있는 한 전진한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다른 것들이 다 앞으로 간다. 우주는 이미 격발되었고, 세상은 벌써 출발해 버렸고, 우리는 태어나 버렸으므로 지금 우리는 모두 달리는 호랑이 등짝 위. 자, 어떻게 할 것인가?
*신: 신은 상징어. 이 책에서는 우주와 동의어로 쓰인다.
*세계: 세계는 ‘우주’와도 비견되는 말. 때에 따라 세계의 중심이 미국이냐 아니냐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철학적으로 세계는 ‘나’를 뺀 나머지 우주. 혹은 ‘나’를 포함한 그 모든 것이다. ‘나’와 세계가 만나는 접점이 바로 ‘나’. 접점이 없다면 ‘나’는 세상에 오지 않았던 것과 같다. 태어나지 않은 것과 아무런 차이 없다. 이에 반드시 세계와 만나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철학적으로 ‘나’라는 존재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