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경철 Mar 30. 2022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

김훈 작가님의 '칼의 노래 중'

 오늘 점심은 뭘 먹나. 점심을 먹으면 오늘 저녁은…. 그리고 다음날 끼니를 걱정한다. 전업주부가 된 후로 항상 습관처럼 하는 걱정이다. 코로나로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끼니’가 더욱 부담스럽다. 이럴 때는 먹는 게 일이 된다. 지겹게 반복되는 일.     


 김훈 작가님의 칼의 노래라는 장편소설에 ‘끼니’에 대한 내용이 있다. 전쟁에 가뭄이 겹쳐 백성들은 굶는다. 계속 굶는다. 그러나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온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라고 말한다. 먹을 것이 없어 속절없이 굶는 백성들에게는 칼이나 총포도 소용이 없다. 이순신 장군이 느끼는 무력감과 전쟁의 참혹함이 전달되었다. 다른 어떤 전쟁에 대한 묘사보다 ‘끼니’에 대한 이 대목이 더 실감 났다. 왜냐하면 당장에 끼니를 굶는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일이고 그 힘듦은 한 끼라도 굶어본 사람들은 짐작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의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온다. 그렇지만 나의 ‘끼니’에 있어서 걱정이란 표현은 맞지 않다. 그냥 ‘궁리’ 정도로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오늘도 나는 무엇을 먹을까 이리저리 궁리해 본다. 잘 생각하면 행복하고 즐거운 궁리이다.     



<김훈 작가님의 칼의 노래 중>     

‘끼니때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끼니는 시간과도 같았다. 무수한 끼니들이 대열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나간 모든 끼니들은 단절되어 있었다. 굶더라도, 다가오는 끼니를 피할 수는 없었다... 먹든 굶든 간에, 다만 속수무책의 몸을 내맡길 뿐이었다. 끼니는 칼로 베어지지 않았고 총포로 조준되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이건 아르센 뤼팽이 저지른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