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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Mar 29. 2022

이건 아르센 뤼팽이 저지른 일이다

모리스 르블랑 지음(성귀수 옮김)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 중

얼마 전 첫째 아이가 ‘왜 아빠는 매일 회사에 가고 늦게까지 일하는 거냐’며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는 아빠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어른이 되면 누구나 싫든 좋든 일을 해야 하는 거야’라고 내가 말해주었다. 그러자 아이가 ‘그럼 엄마는 왜 일 안 해요?’라고 물었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엄마가 예전처럼 일 나갔으면 좋겠어?’라고 동문서답을 해버렸다. 아이는 ‘아니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어른의 일’에 관한 대화는 일단락이 되었지만 나는 신경이 쓰였다. ‘저 애 눈에는 내가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나? 엄마로서의 나의 역할에 대해서 설명을 더 해 줬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좀 억울하기도 했다.     


둘째가 유치원생이 되니 여유가 생기자 이 시간에 내가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들기도 하고 내가 계속 일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나’는 사라지고 ‘엄마’, ‘아내’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면 어깨가 괜히 움츠려 들면서 울적해질 때도 있다.      

아르센 뤼팽은 프랑스의 작가 모리스 르블랑이 창조한 인물이다. 도둑이지만 자신이 할 일과 한 일을 예고하고 드러내길 좋아한다. 변장에도 아주 능하며 그 솜씨가 과히 마술의 경지이다. 나는 뤼팽과 같은 캐릭터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남을 속이고 자기 멋대로 살고 아무리 그 솜씨가 대단한 들 도둑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가 도둑인 것이 분명하듯이 아주 특이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임도 분명하다. 아르센 뤼펭은 이렇게 말한다.     

“이자가 아르센 뤼팽이오!‘ 하고 분명히 얘기할 수 없으면 더 좋지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이건 아르센 뤼팽이 저지른 일이다!‘라고 확실히 명심하는 것이니까.”     

자신이 한 일이 곧 자신이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이 어떻든 누가 자신을 어떻게 보든 외관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자신의 기상천외하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도둑 행각이 그 자신을 말해주는 것이다. 좀 뻔뻔스러운 느낌도 없잖아 있지만 명쾌하지 않은가!      

아무도 내 이름으로 나를 불러주지 않아도 괜찮지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내가 깨끗이 빨아 다려놓은 와이셔츠가, 갓 지어 따뜻하고 찰진 밥이, 손주들 이야기를 듣고 그저 웃으시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나를 말해주는 것이니까.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1. 모리스 르블랑 지음(성귀수 옮김)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 중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는걸. 거울을 보면서도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니까.”

물론 허풍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아르센 뤼팽을 만난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허풍 같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얼굴의 윤곽은 물론 이목구비의 비율마저 뒤바꿔버리는 듯한 그 천재적인 변장 솜씨와 무진장한 연기력의 끝이 어딘지 그 누가 안다고 하겠는가!‘

그러고 보니 또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도대체 왜 한정된 모습만을 가져야 하는 거지? 늘 똑같은 성격을 굳이 왜 고집해야 하느냔 말일세. 어차피 내가 저지른 행위들만으로도 충분히 나라는 사람이 떠오를 텐데 말이야.”

그리고 자신만만한 어조로 이렇게 덧붙였다. 

“이자가 아르센 뤼팽이오!‘하고 분명히 얘기할 수 없으면 더 좋지 뭐. 중요한 것 그게 아니라, ’이건 아르센 뤼팽이 저지른 일이다!‘라고 확실히 명심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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