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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Sep 08. 2022

숱한 문제들과 정면 대결하는 긴긴 겨울밤을 좋아합니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빨래를 개다가 문득 며칠 전의 일이 떠오르면서 부아가 치밀었다.

'왜 그때 그 말을 그냥 바보처럼 듣고만 있었을까. 한마디 시원하게 쏘아붙였으면 좋았을 것을….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나. 도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돌에 내가 맞은 건가…'.


무시당하고 비교당했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면 ‘나의 문제인 건가…’라는 자아비판으로 들어서는 문 앞까지 간다. 누군가의 한 마디가, 몇 초의 그 짧은 순간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탁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그까짓 것에 흔들림 당한 나는 또 뭔가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씁쓸해진다.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가 불혹(不惑)이라던데, 나이만 먹는다고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다. 27살의 나이에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20일을 투옥하면서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이다. 답답한 심경, 그리운 마음은 절절하고 그 가운데 자신을 추스르고 돌아보려는 의지와 성실함은 의연하다.     


시시 때대로 흔들리고 상처받는 나는 지금 어떤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일까. 더 늦기 전에 내가 지금 갇혀 있는 감옥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겠다.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과거를  다시 체험하고 그 뜻을 파헤치다가도 일을 도리어 그르치는 예를 허다히 봅니다. 우리는 참회록이라는 지극히 겸손한 명칭에도 불구하고 정신의 오만으로 가득 찬 저서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오만은 자신의 실패나 치부를 파헤치긴 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중의 성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명적 장치로서의 성격을 떨쳐버리지 못함에서 오는 것으로, 이것은 결국 불행이나 실패에 대한 이해의 일회적이고 천박함에서 오는 오만—인생 그 자체에 대한 오만—이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 쪽에 마음을 너무 많이 할애함으로써 현재의 갈등과 쟁투가 그 전진적 몸부림을 멈추고 거꾸로 과거 에로 도피해버리는 예를 많이 봅니다. 과거에로의 도피는 한마디로 패배이며, ‘패배가 주는 약간의 안식’에 귀의하여 과거에의 예종, 숙명론적 굴레를 스스로 만드는 행위입니다. 나는 이 숱한 문제들과 정면 대결하는 긴긴 겨울밤을 좋아합니다. 꽁꽁 얼어붙은 하늘을 치달리는 잡념들을 다듬고 간추려서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가 겪었던 하나하나의 일들과 만나고 헤어진 모든 모든 사람들의 의미를 세세히 점검하는 겨울밤을 좋아합니다. 까맣게 잊어버렸던 일들을 건져내기도 하고, 사소한 일에 담겨 있는 의외로 큰 의미에 놀라기도 하고, 심지어는 만나고 헤어진다는 일이 정반대의 의미로 남아 있는 경우도 없지 않아 새삼 놀람을 금치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에서 만나는 것은 매양 나 자신의 이러저러한 모습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이러한 겨울밤의 사색은 손 시린 겨울빨래처럼 마음 내키지 않는 때도 있지만 이는 자기와의 대면의 시간이며, 자기 해방의 시간이기 때문에 소중히 다스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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