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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경철 Dec 15. 2022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중에서

나는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형제가 많다는 정도이다. 형제가 몇 명이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을 듣고 대부분 놀라워했었던 기억, 가족 구성을 적는 서류에 5남매 모두를 적기에 칸이 부족해서 형제 중 누굴 빼야 하나 고민했었던 기억이 있다. 


자식이 많으니 엄마는 나의 ‘자기주장’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지금도 뭘 먹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명료하게 말을 하지 못한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늘 북적거렸던 어린 시절의 영향이 있을 것이다. 학교 갔다가 집에 왔을 때 아무도 없을 때 느끼는 적막감과 고요함이 좋았었다. 


내성적인 성격에 사람 만나는 것을 싫어하고, 모험을 즐겨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지 않은 나의 인생은 소위 ‘이야깃거리’가 없다.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없다 할지라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적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며 통찰력과 공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을 읽고 알게 되었다. 글은 누군가 어떤 상황이 나에게 준 무엇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 중에서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그 사람은 “당신, 나에 대해 책을 쓰지 않겠지” 하고 말했었다. 나는 그 사람에 대한 책도, 나에 대한 책도 쓰지 않았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이것을 읽지 않을 것이며, 또 그 사람이 읽으라고 이 글을 쓴 것도 아니다. 이 글은 그 사람이 내게 준 무엇을 드러내 보인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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