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귀자 장편소설 ‘모순’ 중에서
샌드위치를 먹다가 샌드위치 속이 궁금해서 들여다보았다. 블러처리를 한 것처럼 뿌옇게 보인다. 샌드위치를 뒤로 빼서 보기도 하고 다시 당겨서 보기도 했다. 뒤로 가면 좀 선명해지고 앞으로 당기면 흐릿해진다. 샌드위치를 씹는 내내 생각했다. 이것이 노안구나…….
거울을 보면 아직은 희미하지만 곧 존재감을 드러낼 팔자 모양이 보인다. 얼굴 모공의 존재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몇 년 전부터 미용실에 가면 ‘고객님, 흰머리 염색을 좀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는 말을 듣고 있지만 아직은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그런데 노안은 좀 기분이 다르다. 얼굴이야 화장으로 좀 가릴 수도 있고 흰머리도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는데 노안은 늙고 있다는 것의 결정적 증거인 것 같아 어쩐지 기분이 묘해진다. 슬프다기보다는 좀 서글프고, 놀랐다기보다는 가슴이 좀 철렁하는 느낌이다.
엄마는 몸을 기계에 비유하곤 하신다. 기계도 오래 쓰면 고장 나는데 사람이라고 다르겠냐고. 고장 나면 고장 나는 대로 살살 조심조심 써야지 별수 있냐고.
‘그때가 좋은 때다~’라는 말을 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공부에 찌든 학창 시절에 선생님이, 우왕좌왕하던 신입사원일 때 팀장님이, 첫째 둘째 아장아장 걸어 다녀서 엉덩이 붙일 새 없이 따라다니던 때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가 하셨던 말이다.
지나 보니 그때가 좋은 때였다. 젊을 때는 젊음을 모르고, 건강할 때는 건강함을 모르고, 좋을 때는 그때가 좋은 때인지 모른다는 것이 인생의 아이러니다. 잘 모르니 잘 누리지도 못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니 뭐니 해도 기본적으로 인간은 어리석다.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잘 모르니까. 그래서 인생도 힘든 건가 보다.
양귀자 장편소설 ‘모순’ 중에서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